[세상만사] 중동 비극의 '씨앗' 뿌린 영국의 결자해지


다행히 국제사회에서는 가자지구의 인도주의 위기를 끝내야 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 방안으로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서방 선진 7개국 중 프랑스에 이어 영국, 캐나다가 차례로 동참 의사를 밝혔다. 무엇보다 팔레스타인 분쟁의 씨앗을 제공한 '원죄'가 있는 영국 정부의 태도 변화가 눈길을 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9월 유엔 총회 전까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휴전하지 않으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영국은 노동당이 집권하고도 미국과의 관계 등을 고려해 중립적 입장을 유지해왔는데 국내 여론과 국제사회의 압박으로 입장을 바꿨다. 앞서 영국 노동당 의원 200여명은 스타머 총리에게 보낸 서한에서 영국이 '밸푸어 선언'을 내놓고 팔레스타인을 통치했던 나라로서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한다며 '결자해지' 차원에서 결단을 요구했다.
밸푸어 선언은 1917년 1차 세계대전 중에 밸푸어 당시 영국 외무장관이 유대인의 대표 격이던 월터 로스차일드에게 보낸 공개서한 형식의 발표로 영국 내각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 민족국가 건설을 지지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특히 영국은 당시 '이중 약속'으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았다. 1차 대전 당시 오스만 제국 아래에 있던 아랍 지역의 독립을 약속한 '맥마흔 선언'을 한 게 1915년이다. 이 선언은 "아랍인들이 오스만 제국에 맞서 반란에 참여하면 전쟁 후 아랍인들의 독립국 수립을 영국이 지원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전쟁 후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고 2년 뒤 유대인에게 같은 땅에 독립 국가를 건설하는 걸 지지한다고 약속한 것이다.
밸푸어 선언은 유대인의 시오니즘(유대인이 시온의 땅, 즉 팔레스타인으로 귀환하자는 것) 운동에 불을 붙였다. 유럽 등지에 흩어져있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대거 이주하면서 원래 살던 아랍계 주민들과 갈등이 깊어졌다. 결국 유엔의 전신인 국제연맹의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를 맡은 영국이 1948년 철수한 뒤 이스라엘 건국이 선포됐다. 예나 지금이나 강대국에 휘둘리는 게 약소국의 운명이다.
지난 28, 29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이 공존하는 '두 국가 해법'을 주제로 하는 유엔 장관급 회의 후 발표된 공동성명은 팔레스타인 국가를 "아직 인정하지 않은 모든 국가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현재 팔레스타인을 주권국으로 인정하는 나라는 193개 유엔 회원국 147개국이다. 이스라엘의 맹방인 미국을 비롯해 한국, 일본 등 서방 주요국들은 여전히 팔레스타인을 공식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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