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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IBE] 이은준의 AI 톺아보기…AI 영상 시대, 감독의 역할

연합뉴스입력
'The Eternaut' (Netflix) 포스터사진 출처 : 넷플릭스 홈페이지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 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룩북 이미지이은준 교수 제작 이미지
Memory Market의 이안(Ian) 캐릭터 이은준 교수 제작 이미지
최근 몇 년 사이, 영화 및 영상 제작 분야는 인공지능(AI) 기술의 급격한 발전과 도입으로 새 전환점을 맞이했다. 넷플릭스가 아르헨티나 SF 드라마 'El Eternauta'에서 AI로 제작한 건물 붕괴 VFX 장면은 그 속도와 비용 절감 면에서 현장을 놀라게 했다. 기존 고비용·고난도 수작업 기반 VFX 작업이 AI 영상 생성 기술로 일부 대체되면서 제작 현장은 더욱 빠르고 효율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전신이 나와야 하는 샷에서 상반신이나 하반신만 잘려 나오게 된 오류 사례 이은준 교수 제작 이미지
이에 따라 영상 제작에 드는 시간과 인건비, 물리적 자원의 부담이 크게 줄고, 전통적인 제작 방식의 한계를 뛰어넘는 다양한 가능성이 현실로 등장했다.
윤리 필터를 우회하며 괴한에게 공격당한 사람을 표현한 사례 이은준 교수 제작 이미지
하지만 이러한 혁신 뒤에는 AI 영상 기술이 아직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이 명확하다. AI는 주로 각 프레임을 독립적으로 생성하기 때문에 장면의 전체 일관성을 보장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캐릭터의 외형, 배경, 감정의 흐름이 영상 내내 미세하거나 심지어 크게 변하면서 관객의 몰입을 방해한다.
Dread Club 포스터사진 출처 : 제작사 홈페이지

이는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영상 매체의 본질인 '이야기 전달'의 품질에도 직접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프롬프트로 '안개 낀 숲속을 걷는 빨간 드레스를 입은 여성'을 입력하면, AI는 프레임마다 여성의 외모와 배경 색감, 조명, 인물 비율이 달라져 한 편의 영상이라기보다 조각난 이미지가 이어진 듯한 느낌을 준다. 이처럼 AI가 주는 빠른 생산성과 효율성 뒤에는 '시간적·공간적 연속성'을 갖추지 못하는 약점이 자리 잡고 있다. 영화에서 정말 중요한 가치는 '이야기의 흐름'이다. 관객은 단순한 이미지 나열을 보지 않는다. 인물과 사건이 엮이며 만들어내는 감정적·심리적 경험, 인과 관계, 서사적 일관성이 핵심이다. AI 영상이 이 점을 완전히 재현하지 못하는 현시점에서, 감독의 창의적이고 섬세한 조율은 더욱 절실하다. ◇ 일관성과 연속성, 그리고 감독의 새로운 역할 이런 기술적 한계를 넘어서는 작업이 최근 영상 산업의 큰 과제가 됐다. 영상 제작자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과 '멀티모달 입력' 등 새로운 해법을 시도했다. 텍스트만이 아니라 이미지, 음성 등 다양한 데이터를 복합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이 등장했다. 특정 캐릭터나 배경을 다양한 각도·감정으로 만들어서 룩북을 제작하고, 이를 스타일 가이드로 활용해 AI 영상의 불규칙성을 줄이고자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은 인간의 전문성·창의성·집중 없이는 더디게 진행된다. AI는 언어를 스스로 이해하여 이야기를 직조하지 못하고, 단순히 단어와 이미지를 통계적으로 조합할 뿐이다. 필자 역시 직접 만든 단편영화 'Memory Market'의 캐릭터 '이안'을 AI로 처음 제작할 땐 세밀하고 독특한 이미지를 얻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며 다양한 공간과 감정 안에서 이안이 움직이는 과정에서, 몸이 어색하게 잘리는 등 비율이나 카메라 앵글·배경이 다르게 변해버리는 문제를 겪었다. 반복 수정 끝에야 가까스로 스토리보드에 근접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다.

이처럼 감독과 영상 제작자의 섬세한 조율과 지속적인 실험이 수반될 때만 AI 기술의 잠재력이 비로소 실현된다. 최근에는 AI와 인간의 협업이 더욱 깊어져, 독창적이면서도 일관된 영상 미학의 새로운 영역이 기대된다.

AI 영상 제작의 또 다른 벽은 일명 '윤리 필터' 또는 콘텐츠 검열 시스템이다. AI 영상 생성 도구는 자동으로 성인 콘텐츠, 폭력성, 정치·종교적 민감 주제를 감지해 차단한다. 'blood' 'violence' 'cult' 등 특정 단어는 입력 단계에서 제한된다.

이는 사회적 책임과 안전을 위한 장치나 창작의 자유와 표현의 경계를 제한하기도 한다.

필자 역시 이러한 경계를 우회하려 직설이 아닌 은유와 상징으로 프롬프트를 구성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했다. 이는 창작의 자유와 AI 검열을 동시에 고려한 전략이다. 그러나 프롬프트에 따라 결과물이 의도와 다르게 생성되거나, 검열된 주제는 무색무취한 중립적 이미지로 대체되기도 한다.

이처럼 기술적 한계와 검열의 벽은 감독에게 '윤리적 상상력'을 요구한다. 감독은 제한된 조건 속에서도 사회적 책임과 문화적 맥락을 고려한 새로운 창작자의 역할로 거듭난다. 이런 제약과 도전을 오히려 창조적 해석과 더 깊이 있는 내러티브로 승화시키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 AI 시대 감독의 과제와 가능성 AI 영상 생성 기술은 한계와 도전, 그리고 진보를 동시에 내포한다. 최신 AI 영상 툴은 한 번 생성한 장면을 기반으로 장면을 연속·확장해 더 긴 내러티브를 만들기도 한다. 초기 4~9초 영상에서 이어 16초, 30초 이상을 제작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이 과정에서 AI는 더 많은 구조적 패턴을 학습하지만, 작품의 심리적 전환점이나 감정의 누적, 인과적 연결 등 본질적 서사는 아직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래서 감독의 능동적 개입과 편집, 연출이 결정적이다. 감독은 AI가 수천 개의 클립을 생산하는 동안 의미 있는 컷을 선별하고, 색채·음향 디자인을 통해 감정의 흐름을 조율하며 이야기를 완성한다. AI는 점점 더 정교해지지만, 감독이 조직·선택·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 없으면 영상은 여전히 미완의 '재료'에 불과하다. 실제로 2024년 AI 기반 장편 애니메이션 'DreadClub: Vampire's Verdict'는 405달러 초저예산으로 주인공 복장·음성까지 AI 기술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일관된 감정 표현과 플롯의 완성도는 감독의 이끌림 속에서 탄생했다. 웨이마크(Waymark)의 단편 'The Frost'에서도 반복 프롬프트 전략과 AI의 불규칙성을 미학적으로 수용해 캐릭터 일관성을 확보한 감독의 전략이 주목받았다.

이 시대의 감독이 대응해야 할 주요 과제와 전략은 다음과 같다.

| 과제 | 대응 전략 |

|---------------------|------------------------------------------------------------------|

| 캐릭터 일관성 붕괴 | 룩북·멀티모달 가이드 활용, 후반 보정 툴 및 반복 조정 |

| 시네마 문법 위반 | 키프레임 기반 공간 매핑, 컷 연결성 테스트 강화 |

| 감정 흐름 단절 | 색채·음향 디자인 활용, 인과 논리 해석 및 보완 |

| 도구 간 스타일 차이 | 스타일 가이드 고수, 파이프라인 전반의 테스트와 조율 |

| AI 결과 편집 | 방대한 원본에서 최적 컷 선별, 의미 연결, 색·음향 보정 |

이러한 작업은 감독의 예술성과 기술 전문성을 요구하며, 이를 통해 AI 영상 기술은 기술적 진보를 넘어 진정한 예술로 승화될 수 있다. AI 영상 시대의 감독은 '연출자' 이상의 존재가 됐다. 첨단 기술과 인간의 예술성을 조화롭게 융합해, 관객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고 복잡한 내면·윤리적 질문을 영상으로 풀어내는 해석자이자 큐레이터다. 영상 언어와 스토리텔링의 깊이, 메타적인 연출의 감각은 여전히 인간 감독의 고유 영역이다. 앞으로 AI 기술이 더 발전해 인간 감독과의 밀접한 협업이 창작의 일상이 될 때, AI는 더욱 정교하고 일관된 콘텐츠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감독의 창의성·감수성·윤리적 고민은 대체되지 않는다. AI와 인간이 함께 만드는 창작의 미래는 영상 예술의 새 시대를 여는 열쇠이자, 감독이 더 중요한 존재로 거듭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왜'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인간다움과 예술의 깊이를 잃지 않는 내러티브를 지어내는 이가 바로 감독이다. 이점이 AI 영상 시대에 감독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까닭이다. 우리는 지금, 이 역사적 변화의 중심에서, 감독의 역할과 정체성을 재정의하며, 진정한 이야기꾼으로 거듭나는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

이은준 미디어아티스트·인공지능 영상 전문가

▲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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