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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사구의 재발견] ⑤ 제주 신양사구 8만9천㎡ 순비기 군락…모래 위 생태계 보고

연합뉴스입력
제주 사구, 다양한 염생색물 탄소 연간 8만t 저장 '블루카본' 멸종위기 바다거북 산란지이자 달랑게·흰물떼새 서식처
제주 신양 해안사구의 순비기군락[촬영 고성식]

[※ 편집자주 = 해안사구는 바닷가와 그 주변 육상에 있는 모래 언덕 등 모래땅입니다. 해안사구는 해수욕장 백사장에 모래를 공급하는 모래 저장고이며, 거센 파도의 충격을 흡수하는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합니다. 나아가 기후 위기를 막아 줄 '블루카본'의 저장고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발 열풍 속에 제주를 비롯한 국내 많은 사구가 옛 모습과 기능을 잃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제주의 해안사구를 중심으로 그간 크게 쓰임이 없는 모래땅으로만 여겨진 해안사구의 가치를 소개하고, 보전 방안을 찾아보는 기사를 10회에 걸쳐 송고합니다.]

제주 신양사구 (서귀포=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지난 10일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신양사구의 모습. 2025.7.10 jihopark@yna.co.kr (끝)

(제주=연합뉴스) 고성식 기자 = 한여름 제주 서귀포시 신양해수욕장 동쪽 신양 해안사구에 가면 푸른 순비기나무 숲을 볼 수 있다. 70㎝ 이하 작은 키의 순비기나무가 빽빽이 자라 군락을 이루고 있다.

2020년 환경부와 국립생태원 조사 결과 신양 사구 34만5천㎡와 주변의 순비기나무 식생 면적은 8만9천30.3㎡로, 이 지역 전체 식생 면적 19만6천861.8㎡ 중 45.2% 이상을 차지했다.

제주 사구에서는 모래바람이 강하게 불어 순비기나무의 '포복지'가 발달했다. 포복지는 줄기가 하늘 위로 자라지 않고 땅 위를 기듯이 길고 넓게 퍼지는 현상이다. 여러 순비기나무의 줄기가 옆으로 퍼지고 서로 얽히면서 군락지 면적이 넓게 형성되는 특징이 나타난다. 제주 신양 사구의 순비기나무 군락지는 전국 사구 189곳 중 최대 규모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전국의 해안사구를 조사한 서종철 전 대구가톨릭대 지리과학과 교수는 "제주 신양 사구는 잘 보존돼 있고, 사구 자체도 넓다"며 "전국 모든 사구를 돌아본 경험에 따르면, 신양 사구의 순비기나무 군락지는 전국 사구 가운데 가장 넓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제주 해안사구의 염생식물(왼쪽부터 갯강활, 갯메꽃, 갯강아지풀)[촬영 고성식]

◇ 해안사구는 염생식물의 보고이자 탄소 저장고

제주에서는 순비기나무를 '숨베기', '숨부기', '숨북낭', '숨비기' 등으로 부른다. 해녀 물질 때 쓰이는 '숨비', '숨바쁘다', '숨방귀' 등의 말과 같이 순비기나무 명칭에도 '숨'이 들어 있을 정도로 제주 해녀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제주 해녀는 오랜 물질로 잠수병 등의 두통이 심할 때, 사구의 순비기나무 열매를 따 말린 후 베갯속에 넣거나 전초를 채취해 따뜻한 목욕물에 넣고 향기를 맡으면서 두통을 완화했다고 한다.

순비기나무는 땅속뿌리가 옆으로 뻗으며 마디마다 싹과 뿌리를 낸다. 많은 뿌리가 땅속 깊숙이 뻗어 사구의 모래를 고정하는 효과가 크다.

최근에는 제주도는 탄소 저장 능력이 큰 염생식물 군락 조성을 위한 대표 종으로 순비기나무를 선택해 사구에 심고 있다.

제주 해안사구의 염생식물(왼쪽부터 갯금불초, 갯씀바귀, 갯쑥부쟁이)[촬영 고성식]

해안사구의 순비기나무는 모래지치, 갯그령, 갯메꽃, 통보리사초 등과 함께 섞여 자란다.

신양 사구에는 초기사구부터 전사구, 배후사구까지 지형 순서대로 갯씀바귀, 좀보리사초, 계요등, 돌가시나무, 돌해국, 후박나무 등 176종의 식물이 분포하고 있다.

좀보리사초는 전사구 지역에 넓게 분포했으며 거문딸기, 노알원추리, 털머위, 풍게나무, 좀털쥐똥나무 등 다양한 식물이 배후삼림 지역에서 관찰됐다.

안덕면과 대정읍 해안에 걸쳐 있는 사계 해안사구에도 순비기나무 군락지가 5만6천703.9㎡ 면적에 펼쳐져 있고 이외 갯불금초와 모래지치, 우산잔디, 좀보리사초, 통보리사초 등의 식물 군락이 8천609㎡ 면적에 자생한다.

협재 사구에서는 배후사구를 중심으로 관속식물이 집중돼 있고 한국 멸종위기종(적색목록)으로 향나무도 관찰됐지만, 관광지라는 이유로 워싱턴야자수, 카나리아야자나무 등 외래 생태계교란종이 인위적으로 심겨 생태계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국립생태원은 2020년 당시 조사에서 "신양 사구와 사계 사구는 해안사구 지형이 잘 보전돼 다양한 식물과 동물의 서식처가 되고 있고 자연성이 높은 상록활엽수 군락이 잘 보전돼 있어 가치가 높다"며 "생태경관보전지역 등으로 지정해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제주 해안사구의 염생식물(왼쪽부터 좀보리사초, 갯방풍, 모래지치)[촬영 고성식. 제공=이성권 작가]

조사에서는 하도 사구 남쪽 전사구에 갯방풍 단일 종이 1천개체 이상 분포한 것도 특이점으로 조사됐다.

각각의 해안사구에는 건조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관속식물이 11∼15종 분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체 육상 관속식물 종의 6∼16%에 해당하며 사구가 척박하다는 인식과 달리 생태계가 매우 풍부함을 보여준다.

멸종위기 야생생물도 확인됐다. 사구에서는 노랑부리백로, 물수리, 대홍란 등 멸종위기야생생물이 관찰됐다.

'이야기가 있는 제주의나무' 저자 이성권 작가는 "생태적으로 해안사구는 바다와 육지 생태계 간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며 해안사구의 풀과 같은 초본식물은 모래를 덮어 바람에 의한 이동을 막고, 토양을 고정해 배후지를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해안사구에는 소금기를 머금고 살아가는 식물인 염생식물 군락이 형성돼 있고 키 작은 풀에서부터 나무들이 다양하게 있어 하나의 독립적인 생태계를 이룬다"고 말했다.

해안사구와 물가의 염생식물들은 온실가스인 탄소를 장기간 저장해 대기의 탄소량을 줄이는 '블루카본'으로 주목받고 있다. 블루카본은 연안에 서식하는 식물과 퇴적물을 포함하는 연안 식물생태계가 저장·격리하는 탄소를 말한다.

2022년 제주연구원의 '탄소중립을 위한 제주형 블루카본 사업 모델 모색'에 의하면 제주는 국내 육상 면적의 단 1.8%에 불과하지만, 해양과 연안의 면적은 25%를 차지해 블루카본의 잠재력이 매우 큰 것으로 분석됐다.

제주 해안사구의 염생식물과 연안 해초류(잘피 등), 염습지, 해조류, 패류에 의해 고정된 탄소량은 연간 약 7만9천351t으로 추정됐다. 이는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약 16억원 규모이며 산림 조성 효과로는 최소 31만6천그루에서 최대 71만6천그루를 심는 것과 같은 효과로 추산된다.

제주 해안사구의 염생식물(왼쪽부터 통보리사초.노간주빗자루)[촬영 고성식. 제공=이성권 작가]

◇ 해안사구는 멸종위기·보호 동물에도 생명의 땅

해안사구의 다양한 식물은 동물의 둥지나 은신처가 되고, 먹이가 돼 다양한 동물이 사구에서 터전을 잡게 한다.

제주 해안사구에서 볼 수 있는 흰물떼새와 꼬마물떼새는 사구의 염생식물 사이 모래 위에 알을 낳는다.

초원에 알을 낳는 종다리도 해안사구에서 산란하는 것이 확인된 바 있다.

보통 3∼6월에 산란하는 흰물떼새는 제주 해안의 자연성을 가늠할 수 있는 환경 지표종으로, 특정 지역의 환경 상태를 측정하는 척도가 되는 생물이다.

흰물떼새는 하도, 표선, 신양, 종달 해안사구 등 동부지역 사구에 많이 산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하도·종달 해안사구는 국제 멸종위기종인 저어새를 비롯해 수많은 겨울 철새가 날아와 먹이를 먹는 곳이다.

양수남 제주자연의벗 사무처장은 "제주 해안사구에 올레길 등 트레일이 조성돼 많은 탐방객이 이동하고 있는데 흰물떼새 둥지를 실수로 밟거나 산란 시기 사구 출입으로 산란을 방해할 수 있다"며 "산란 시기 해안사구 출입을 일정 정도 통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제주 해안사구의 흰물떼새[촬영 고성식]

제주 해안사구 모래땅에는 해양수산부가 지정한 법정보호종인 달랑게도 살고 있다.

달랑게는 집게다리로 모래를 퍼서 입에 넣은 뒤, 유기물만 걸러 먹고 남은 모래는 둥글게 뭉쳐 다시 뱉어내는 먹이 활동을 하며 생태계 순환에 기여한다.

달랑게는 주로 낮에는 모래에 구멍(굴)을 파고 들어가 지내고 밤이 되면 먹이 활동을 한다.

사구에는 또 네팔나비과, 노린재목 등 곤충 12종이 관찰되며, 이는 전체 육상 곤충의 21.4%에 해당한다.

멸종위기종인 바다거북은 모래 해안 등 사구에 알을 낳는다. 국내 바다에서는 푸른바다거북, 붉은바다거북, 매부리바다거북, 올리브바다거북, 장수거북 등 5종이 발견된다.

제주 해안사구의 달랑게[제주환경운동연합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제주에서는 과거 중문해수욕장에서 바다거북 산란이 주로 목격됐다.

기록상으로는 1999년 10월 18일 중문해수욕장 해안사구에서 부화한 새끼 바다거북 100여 마리가 모래를 뚫고 나와 바다로 향하는 장면이 부근 호텔 직원에 의해 목격됐다.

2004년과 2007년에도 중문해수욕장에서 바다거북의 산란이 기록됐지만 그 이후 18년 넘게 제주도내 해안사구에서 바다거북의 산란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바다거북은 해양 오염과 더불어 산란지인 해안사구가 개발로 훼손되고 해안으로 사람의 출입이 밤낮 이어지면서 산란 자체가 어려워졌다고 보고됐다. 현재 바다거북은 멸종위기에 처한 보호종이다.

바다거북 보호 활동을 하는 제주자연의벗은 제주 해안 휴식년제를 제안했다.

오름 생태 회복을 위해 일정 기간 탐방을 통제하는 '오름 휴식년제'처럼, 주요 해변 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해 특정 해변의 출입을 일정 기간 제한하자는 취지다.

또 바다거북 산란 시기에는 해안 산책로의 야간 조명을 꺼서 바다거북이 안심하고 바다에서 해안사구로 올라와 산란할 수 있게 하자는 제안도 했다.

제주의 바다거북[연합뉴스 자료 사진]

(이 기사는 제주환경공익기금위원회 지원을 받아 제작됐습니다.)

koss@yna.co.kr

(끝)

제주 해안사구의 달랑게 보호 팻말[촬영 고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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