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들] '공무원이 무슨 죄?'…이재명식 인사 감상법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2010년 6월 성남시청에 들어선 이재명 시장이 시 공무원들을 불러모았다. "지금까지의 허물은 다 덮어두겠다. 앞으로 뒷돈 받고 위에 갖다 바치면 절대 가만 안 두겠다. 실력만 보겠다." 새 시장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던 공무원들은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얼마 전까지 성남 빈민의 투사였던 사람이 뇌물 장부부터 뒤질 줄 알았는데 뜬금없이 용서라니.
처음에 긴가민가했던 공무원들은 전임 시장의 측근이 중용된 인사를 보고는 이내 의심이 풀렸다. 시 청사 안팎엔 "우리가 생각했던 이재명이 아니네"라는 말이 돌았다. 시장이 인사 문제로 친형과 다투고 여동생이 환경미화원으로 계속 일하는 모습에서 '앞으로 일만 열심히 해야겠다'는 공무원들의 다짐이 굳어졌다.
"공무원이 무슨 죄냐"는 대통령 당선 전 이재명이 기자들에게 자주 던진 화두다. 공무원이 본연의 업무는 내팽개치고 이리저리 줄을 대 출세하려는 건 공무원이 아니라 그들의 생명줄을 쥔 인사권자와 정치 탓이라는 인식이 그 출발점이다.

이 대통령의 말대로 공직사회는 누가 권력을 잡느냐에 따라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정치권과 쏙 빼닮았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권력자와 연이 없으면 적폐, 부역자 낙인이 찍혀 인사에서 물을 먹는다.
적폐청산이라 한답시고 표적감사를 하고 그래도 나오는 게 없으면 개인계좌와 법인카드를 털어 잡범으로 만들기 일쑤다. 진보가 권력을 잡으면 갑자기 '호남 사람'이 많아지고 보수가 잡으면 갑자기 '영남 사람'이 많아지는 이유다.
고향이 어딘지, 전 정권에서 뭘 했는지, 출신 대학이 어딘지가 출세의 기준이 되다 보니 중앙부처, 공기업 할 것 없이 인사 때마다 투서와 음해, 배신이 난무한다. 인적쇄신의 다른 말인 피의 보복은 국정원과 군, 검찰이 가장 심각하다. 처세에 능한 무능력자가 운 좋게도 줄을 잘 잡아 조직과 부서의 장이 되니 인사평가제가 수용될 리 만무하다.

이 대통령은 사법리스크로 재판에 불려 다닐 때 기자들이 "맨날 비판만 해서 인간적으로 미안하다"고 하자 "에이.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먹고 살아야 하잖아" 하며 껄껄 웃었다. 그의 너털웃음은 소년공 시절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는 왼 손목이 소가죽 프레스 기계에 눌려 반쯤 돌아간 상태에서 공장 반장들의 지시로 다른 소년공들과 권투 시합을 해야 했다. 한쪽 손목을 못 쓰기에 친구들에게 할 수 없이 얻어맞아야 했지만, 유일한 생존 수단인 프레스기를 지키려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그런 고통을 겪으면서 사람과 사회를 꿰뚫어 보는 남다른 안목을 갖게 됐다.
이 대통령이 윤석열 정부의 송미령 농림부 장관과 오유경 식약처장을 유임시키더니 대미 특사로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김종인 카드'는 파격 중 파격이라는 반응을 낳고 있지만, 삶 자체가 생존을 위한 싸움이었던 이 대통령의 인생 역정을 잘 안다면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다.
아직 판단 내리긴 이르지만, 이재명식 실용주의 인사가 정치 구호가 아님이 드러나고 있다. 정치권에 휘둘려 영혼 없이 산다는 공무원들, 특히 장·차관이 되려고 줄 대기를 고민하고 있을 고위공무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식일 것이다. 인사권자가 어떻게 하느냐가 이래서 중요하다. 야권의 주장대로 보여주기용 이벤트가 되지 않으려면 집권여당의 인내도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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