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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선 방화 그날…휘발유에 미끄러진 임신부, 2초 뒤 '불바다'

연합뉴스입력 2025-06-25 13:10:45
한강 하저터널 지날 때 휘발유 붓고 불붙여…승객 481명 탑승 불연성 내장재·빠른 대피로 참사 피해…소화기로 불끈 시민도

한강 하저터널 지날 때 휘발유 붓고 불붙여…승객 481명 탑승

불연성 내장재·빠른 대피로 참사 피해…소화기로 불끈 시민도

(서울=연합뉴스) 서울남부지검 '지하철 5호선 방화 사건' 전담수사팀(팀장 손상희 부장검사)은 25일 살인미수와 현존전차방화치상, 철도안전법 위반 혐의로 원모(67)씨를 구속기소 했다고 밝혔다. 경찰 단계에서는 없었던 살인미수 혐의 등이 추가 적용됐다. 사진은 방화 현장. 2025.6.25 [서울남부지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동환 최윤선 기자 = 평화로운 토요일 아침이었다. 지난달 31일 오전 8시 42분, 여의나루역에서 마포역으로 향하던 5호선 열차가 1.6㎞의 한강 하저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 수다를 떠는 남녀 사이로 흰색 모자를 눌러쓴 남성이 열차 가운데 칸인 4번 칸에 있었다. 그는 갑자기 백팩 안에서 페트병을 꺼냈다.

[서울남부지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남성은 페트병에 든 노란 액체를 바닥에 쏟아부었다. 휘발유였다. 6.8m가량 바닥에 퍼진 기름에 놀란 승객들은 소리를 지르고 서로 부딪치며 옆 칸으로 뛰었다.

한 임신부는 달리다 휘발유에 미끄러져 넘어졌다. 신발 한 짝을 포기하고 기어서 겨우 도망치던 무렵, 이 모든 소동에 무심한 듯 방화범은 라이터로 휘발유에 불을 붙였다.

이 모든 일이 벌어진 시간은 불과 20초였다. 불길은 삽시간에 번져 4번 칸을 집어삼켰다. 임신부가 2∼3초만 늦게 도망쳤어도 몸에 불이 붙을 수도 있었다.

자칫 대형 참사로 번질 뻔했던 지난달 31일 서울 지하철 5호선 방화 사건의 아찔한 순간은 서울남부지검이 25일 공개한 내부 폐쇄회로(CC)TV 영상에 고스란히 담겼다.

(서울=연합뉴스) 서울남부지검 '지하철 5호선 방화 사건' 전담수사팀(팀장 손상희 부장검사)은 25일 살인미수와 현존전차방화치상, 철도안전법 위반 혐의로 원모(67)씨를 구속기소 했다고 밝혔다. 경찰 단계에서는 없었던 살인미수 혐의 등이 추가 적용됐다. 사진은 방화 현장 CCTV. 2025.6.25 [서울남부지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방화범 원모(67)씨는 살인미수와 현존전차방화치상, 철도안전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살인의 의도가 명확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문이 닫힌 지하철 구조상 화재 및 유독가스 확산으로 열차에 타고 있던 승객 481명(인적 사항이 특정된 승객은 160명)의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지하철 내장재가 불연성 소재로 교체돼 불길이 옮겨붙지 않았고, 승객들이 신속히 대피한 덕분이다.

일부 승객들은 비상 핸들을 작동시켜 열차를 비상 정차시킨 후 출입문을 열어 유독가스를 외부로 배출했고, 객실 내 비치된 소화기로 잔불을 껐다.

검찰은 "화재 재연 실험 결과 급격하게 화염이 확산하는 휘발유 연소 특성상 승객 대피가 늦었다면 인명피해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고 밝혔다.

기관사도 승객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대피로 안내를 했다. 열차를 빠져나온 승객들은 지하터널을 걸어 나와 목숨을 건지게 됐다.

성숙한 시민 의식도 돋보였다고 검찰은 밝혔다.

자기 한 몸 챙기기도 쉽지 않은 다급한 상황 속에서도 몸이 불편한 노약자를 부축하거나 업어서 대피를 돕고,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4번 칸에 뛰어 들어가 소화기로 불을 끈 시민들이 대표적이다.

출퇴근하던 경찰관 4명은 방화범 검거에 일조했다. 서울청 8기동단 전성환·신동석 순경, 서울청 과학수사과 이주용 경위, 종로서 정재도 경감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방화를 저지른 후 옆 칸에 쓰러져있던 원씨를 일반 승객으로 인식하고 들것에 실어 여의나루역까지 이송했다. 그의 손에 그을음이 많은 것을 수상하게 여긴 경찰이 추궁한 끝에 현행범 체포까지 이르렀다.

dhl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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