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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 지구와 인간을 생각하다…부커상 '궤도' 국내 출간

연합뉴스입력
"세상을 낯설고 새롭게 만드는 기적의 소설" 호평받은 서맨사 하비 소설
[서해문집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발아래서 지구가 빠르게 구르고 있었다. 놀랍도록 적나라한 지구. 여기서 보는 지구는 단단한 고체 같지 않다. 표면은 흐르고 있고 반질반질하다."

지난해 영국 부커상을 받은 영국 작가 서맨사 하비(50)의 소설 '궤도'(서해문집)가 이달 20일 국내 출간된다.

이 소설은 지구의 주위를 맴도는 우주정거장을 배경으로 한다. 우주정거장은 90분에 한 차례씩 24시간에 총 16바퀴 지구를 공전한다.

각 장을 구분하는 소제목은 '궤도 1, 상행', '궤도 1에서 궤도2로', '궤도 3, 상행' 등 우주정거장이 통과 중인 지점을 나타낸다. 마지막 장의 제목은 '궤도 16'으로 이 소설이 24시간 동안의 일을 다루고 있음을 나타낸다.

영국, 미국, 이탈리아, 러시아, 일본에서 온 우주비행사 6명이 등장하지만, 소설은 특정 인물의 이야기를 중심에 두지 않고 우주정거장이라는 독특한 배경과 그 안에서 생활하는 인물들을 관찰하는 데 집중한다.

우주정거장에서는 지구와 거리가 멀어진 만큼이나 시간에 대한 관념도 희미해진다. 지구에서 시간이 자전 주기에 따라 해가 뜨고 지는 것으로 명확한 존재감을 갖는 것과 달리 우주정거장에선 하루 열여섯 번 낮과 밤을 오가며 시간 감각을 무디게 한다.

우주비행사들은 24시간 주기로 생활하도록 교육받고 규칙적으로 식사와 수면을 반복하지만, 어떤 노력으로도 세상과 떨어졌다는 외로운 감각을 떨쳐내지 못한다.

예를 들어 일본인 우주비행사 '치에'는 이곳에 있는 동안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해 슬픔에 빠진 가운데서도 현실감을 느끼지 못한다.

"남은 평생 궤도에만 머무를 수 있다면 모든 건 무사할 것이다. 엄마는 치에가 지구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죽은 게 아니다. 이건 마치 의자 뺏기 놀이와 같다. 모두가 앉을 의자는 부족하지만, 노래가 나오는 한 의자 개수는 중요하지 않고 모두가 게임을 즐길 수 있다."(본문에서)

'궤도'는 우주 공간에서 느끼는 외로움, 지구에서 당연하게 여겼던 시간 감각에 대한 의구심, 우주에서 내려다본 지구의 모습과 그 안에서 느껴지는 인간 존재의 나약함 등 다양한 감정을 담아낸다.

그리고 그 여러 감정은 궁극적으로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성찰로 이어진다.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면 더 객관적인 면을 발견할 수 있듯이 소설은 우주에서 지구와 인간을 새로운 시각으로 관찰한다.

작가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유럽우주국(ESA)에서 자료를 제공받아 실제 우주비행사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집필했다.

[런던 AP=연합뉴스]

'궤도'는 작년 부커상 시상식에서 "우리 세상을 낯설고 새롭게 만드는 기적의 소설"이란 평가를 받으며 최종 후보 6편 가운데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5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는 만장일치로 이 작품을 골랐다.

철학을 전공한 서맨사 하비는 2009년 알츠하이머 환자의 이야기를 다룬 데뷔작 '황야'(The Wilderness)로도 부커상 후보에 오르며 주목받았다. 현재까지 데뷔작을 포함해 총 4편의 소설을 펴냈다.

송예슬 옮김. 240쪽.

jae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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