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괴테는 '파우스트'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쓴 독일의 국민 작가다. 절반만 맞는 얘기다. 그는 글을 쓰는 시간 못지않게 자연을 관찰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 과학자이기도 했다.
괴테는 예술 활동을 위한 영감을 항상 자연의 "드러나 있는 성스러운 비밀"에서 얻어왔으며 그 비밀들은 우리가 감각으로 지각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드러내 준다고 말했다. 그는 예술과 과학이 모두, '우주를 탄생시킨 모든 존재의 근원 요소'(primal source of all being)에서 발생하거나 거기로 향해 있다고 여겼다.
사람들은 작가 괴테는 존경했지만 '과학자' 괴테는 무시했다. 한 사람이 과학과 예술처럼 극단적 반대영역에서 동시에 천재일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괴테가 구름, 식물, 광물, 동물, 색채, 인간을 관찰해 남긴 수많은 기록은 독일 바이마르 서고에 내팽개쳐진 채 오랜 세월 잠들었다.
100년 후 과학자 루돌프 슈타이너가 이 자료들을 편집해 정리한 이후에야 사람들은 '과학자' 괴테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연구의 방대함과 정확성에 찬탄을 금치 못했다. 괴테를 두고 '유기적 세계의 코페르니쿠스이자 케플러'라는 칭송이 잇따랐다.
생물학자 마거릿 코훈과 환경 예술가 악셀 이월드가 함께 쓴 '식물을 보는 새로운 눈'(안그라픽스)은 자연을 관찰하고 그리는 연습을 통해 사계절을 여행하면서, 자연을 보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 책이다.
책을 가로지르는 아이디어는 자연을 관찰하는 괴테의 총체적인 방식이다. 자연 관찰과 예술 활동이 서로 보완함으로써 사물을 깊이 있게 인식하도록 돕는다는 철학 말이다.
책 속의 계절은 감자를 캘 무렵인 늦가을 혹은 초겨울에서 시작해 한겨울과 봄과 여름을 지나 탐스럽게 열린 열매를 수확하는 가을로 돌아와 끝났다. 그 1년간 식물을 관찰하고 그리는 방법을 저자들은 소개한다.
20m가 넘는 거대한 너도밤나무가 그저 낙엽 사이에 흩어져있던 도토리만 한 작은 열매에서 비롯됐다는 사실, 정물화의 대상이 되는 과일이나 식물도 고요하지만, 여전히 활동하는 생명이라는 사실 등 관찰과 그리기는 생명의 경이로움을 깨닫는 일련의 과정이다.
"우리는 겨울에서 시작하면서 회색, 흰색, 검은색으로 헐벗은 계절을 냉철한 눈으로 '있는 그대로' 보았다. 보이는 것에도 그림을 그리는 방식에도 딱딱하게 결정화된 요소가 있었다…우리는 그 안에 숨어 있는 경이로움과 영광을, 곧 지난여름 하얀 등불 같았던 어수리의 꽃 무리와 우아한 참나무의 자태 그리고 미래에 대한 예감을, 천상의 상상력과 겨울 꿈 안에서 감지할 수 있었다."
책의 부제는 '관찰과 그리기로 자연과 하나 되기'다.
이정국 옮김. 2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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