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마드리드 소로야 미술관 소장 (서울=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온통 하얗다. 침대, 이불, 베개, 벽지까지 모두 하얗다. 그래서인지 두 인물이 붕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해변 산책'마드리드 소로야 미술관 소장 스페인 인상주의 화가 호아킨 소로야(1863∼1923)가 그린 '엄마'(1895)다. 엄마가 아기를 바라보고 있다. 그에 호응하듯 잠든 아기도 엄마에게 향해 있다. 여린 미소지만, 엄마가 지을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다. 평화를 강조하기 위해 작가는 주변을 모두 백색으로 채웠을 것이다. 인상주의 대가답게 소로야 작품 특징은 빛의 명징한 묘사다. 특히 그가 야외에서 좇은 빛의 자취는 워낙 생생하고 아늑해 '빛의 해방'으로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소로야 작품 특징은 빛 이외 '가족'이다. 평생 가족 바라기였기에 쉼 없이 가족을 그렸다. 가족은 그의 영감을 일깨우는 동력이었다. 이런 특징은 그의 성장 배경에서 유추된다. 그가 태어난 이듬해 양친을 전염병으로 동시에 잃어 친척 집에서 성장했다. 부모 사랑을 항상 그리워하며 자랐다. 결핍이 결핍에 머무르지 않고, 애정으로 승화한 경우다. 빛과 가족 사랑은 바다 사랑으로 연결됐다. 그의 고향이 지중해에 접한 발렌시아인 것도 연관되지만, 풍성한 빛을 받으며 바다에서 산책하거나 노는 가족 모습을 사랑으로 호출했다. '해변 산책'(1909)은 자기 아내와 딸을 그린 작품으로, 그의 가족 사랑 절정이다. '요람'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작품에 모성을 편입한 화가는 프랑스에서 활약한 인상주의 여성 화가였다. 여성이 야외에서 그림 그리는 모습을 경시하던 시대 분위기 탓에 실내나 정원 풍경을 주로 그려야만 했던 한계 속에서도 뛰어난 관찰력과 정교한 구도로 그녀들 대표 작품을 창출했다. 베르트 모리조(1841∼1895)가 그린 '요람'(1872)은 그녀 언니와 조카를 그린 작품으로, 가족이나 모성을 그린 그림을 예시할 때 빠지지 않는다. 엄마 시선과 아기 자세가 평화롭기 그지없다. 얼굴을 괸 엄마 왼손과 요람 끝에 걸친 오른손, 머리 옆으로 올린 아기 오른손이 삼각형을 이루고 있다. 아기를 감싼 보호막도 삼각형이다. 삼각형은 안정과 균형을 표상한다. '셔틀콕'개인 소장 그녀에게도 가족은 끝없이 샘솟는 영감의 원천이었다. '셔틀콕'(1888)처럼 대부분 작품에 가족을 그렸다. 가족이 등장하지 않는 작품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아이의 목욕'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소장 미국 출신이며 프랑스에서 활약한 매리 커샛(1845∼1926)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지만, 유별날 정도로 가정생활을 즐겨 그렸다. 모성이 두드러진 작품으로 '아이의 목욕'(1893)을 든다. 아이의 포동포동한 살집이 사랑스럽고, 엄마 옷과 카펫 무늬는 안정감을 준다. 더없이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둘의 접촉이다. 접촉은 연인 사이든 가족 사이든 사랑의 직접성이다.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루이즈'개인 소장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루이즈'(1898)는 몸의 접촉뿐 아니라 눈의 접속으로 이어져 감상자들 경험을 일깨우며 미소를 짓게 한다. 세상엔 수없이 많은 엄마와 아기의 '대화'가 있다. 엄마는 아직 말하지 못하는 아기와 끊임없이 말을 나눈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1962∼)은 이를 인류가 문화를 닦고 발전시킨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주장한다. 냉정한 시장 경제 특성을 설파한 고전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1723∼1790)도 '도덕 감정론'에서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이라도 떨칠 수 없는 본성은 동감과 연민이라고 강조했다. 그 최초 발현이 가족이다. 사람은 감정이 솟구칠 때 시를 짓는다. 시인이 쓴 시를 읊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시를 짓는다. 엄마와 아기의 대화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정시다. 나아가 가족 이름으로 짓는 시는 공감의 숨결이다. 그러므로 시가 되어야 할 자리에 시가 서지 못하면 그 자리엔 상처가 생긴다. 흉터로 남는다. 가족 사이 사랑이 사라진 경우다. 최초, 최후, 최악의 비극이다. dohh@yna.co.kr(끝)<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