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게인 2024 투란도트' 공연 리뷰
(서울=연합뉴스) 이용숙 객원기자 = '어이가 없다, 한숨만 나온다, 분노가 치민다….'
22일 저녁, 서울 코엑스 D홀에서 막을 올린 '어게인 2024 투란도트'를 보러 왔다가 공연 시작 시간이 훨씬 지나서도 공연장 입구에 길게 줄을 서 있어야 했던 관객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표현들이다. 예매 시 좌석 배치도와 실제 공연장 좌석 배치도가 달라 예매한 좌석들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고, 주최 측에서 이 관객들에게 좌석을 재배정하는 과정에서 항의와 환불 요구 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입구 바깥에서 오가는 고성을 들으며 영문도 모른 채 20분 넘게 지연되는 개막을 기다리고 있던 공연장 안의 관객들도 불안한 마음이었다.
마침내 빈자리가 거의 채워지고 공연이 시작되었지만,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확성된 성악 음향이 지나치게 크게 설정되어 초반에는 오케스트라 음악이 상대적으로 너무 작게 들리는 등 음악 밸런스에 문제가 있었다. 칼라프 역을 맡은 테너 유시프 에이바조프의 고음은 확성으로 인해 찢어져 들리기도 했고 투란도트 역의 소프라노 아스믹 그리고리안이 노래할 때는 스피커가 몇 차례 지지직거리는 소리를 내 감상을 방해하기도 했다.
4천 석 객석에는 단차가 없어서 뒤쪽 관객들은 무대를 제대로 볼 수 없었고, 그 때문에 내내 무대 양옆에 설치된 모니터 스크린으로 공연을 감상해야 했다. 하지만 실시간으로 무대를 확대해 보여주는 모니터가 성악가 한두 명만 겨우 화면에 담을 수 있었던 데다, 노래를 부르고 있지 않은 엉뚱한 성악가를 비추는 경우도 많아 관객들을 종종 답답하게 했다. 무대 양쪽 상부에 전광 자막기를 설치했다면 자막 읽기가 훨씬 수월했을 텐데, 자막이 모니터 화면 안에 흰 글씨로 들어있어 가독성이 떨어졌다. LED 영상이 투사되는 무대 위의 기둥들이 시야를 방해해 정중앙 좌석을 제외하고는 좌우 거의 모든 좌석에서 어느 정도 시야 장애가 있었던 것도 문제였다.
'제작비 200억 원, 티켓 최고가 100만 원'으로 일찍부터 화제를 모았던 공연인 만큼, 어수선하고 체계 없는 티켓 부스, 주최 측의 미숙한 안내와 진행, 정보가 적고 디자인도 조야한 프로그램 북에 이르기까지 관객들은 갖가지 비판을 쏟아냈다.
몰입을 방해하는 이 모든 주변 환경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끝까지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은 주최 측이 아마도 개런티로 제작비의 대부분을 투입했을 탁월한 출연진 덕분이었다. 이처럼 세계 정상급 성악가들을 한자리에 모으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타이틀 롤을 맡은 아스믹 그리고리안은 확성에서 오는 잡음에도 불구하고 역대 최고의 투란도트를 선사했다. 냉정하고 당당해 보이는 외피 안에 흐르는 불안과 신경증, 심리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어린아이 같은 모습까지 그리고리안은 치밀하게 표현해냈다. 강렬하고 투명한 고음과 마음을 울리는 깊은 음색은 전율을 일으켰다.
이날 투란도트 못지않은 열렬한 갈채를 받은 가수는 노예 류 역을 맡은 소프라노 줄리아나 그리고리안이었다. 명징한 고음뿐 아니라 어두운 음영이 묻어나는 탄탄한 중저음도 대단히 매혹적이었고 표현력 또한 뛰어났다. 에이바조프의 칼라프 역시 데뷔 시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소리가 트여 있었고, 유연하며 자신감이 넘쳤다. 음정이 다소 불안한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그의 '네순 도르마'는 관객의 큰 호응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다른 날 칼라프를 노래할 브라이언 제이드와 알렉산드르 안토넨코 역시 최고의 테너들이어서 기대를 모은다.
호세 쿠라가 지휘한 심포니 사계와 뉴서울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무난하게 성악진을 받쳐주었다. 연출과 무대 동선 관련해서는 아쉬움이 많았다. 다비데 리버모어가 최근 몇 년간 세계 무대에서 보여준 천재적인 연출력을 고려할 때, 주최 측이 그에게 특정한 방향 제시 없이 연출을 일임했더라면 더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을 것이다.
공연은 31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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