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아웃] 아주 보통의 하루
연합뉴스
입력 2024-12-23 12:00:02 수정 2024-12-23 12:00:02


일출

(서울=연합뉴스) 김종우 기자 = 코로나19 팬데믹이 극성을 부리던 2021년 힘겹게 하루를 버텨내는 한국인들에게 위안과 희망의 메시지를 주자는 의도에서 『아주 보통의 행복』이라는 에세이집이 발간됐다. 최인철 서울대 행복연구센터 센터장(심리학과 교수)이 펴낸 이 에세이집은 보통 사람들의 '행복 담론'을 담담한 어조로 풀어냈다. "행복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행복은 일상을 위한, 일상에 의한, 일상의 '삶'에 있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최근 발간된 『트렌드 코리아 2025』는 내년 트렌드 전망 10개 키워드 중 '아주 보통의 하루'(아보하)를 두 번째 타자로 내세웠다. 최 센터장의 책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아보하는 행복하지도, 그렇다고 불행하지도 않은 잔잔한 일상의 가치를 강조한다. 한마디로 특별한 사건이 없는 평범한 하루를 의미한다. 현대 사회에서 많은 사람은 "행복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 살고 있지만, 아보하는 이러한 강박에서 벗어나 안정된 일상을 긍정적으로 바로 보고 이를 실천하자는 제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선 성취 중심적 사고가 스트레스와 불안을 가중하는 주범 가운데 하나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여기에 코로나19 창궐 당시 많은 사람이 일상의 불확실성과 공포를 경험하면서 일상의 가치를 주목하게 됐다. 무한경쟁에서 벗어나 소소한 일상에서 즐거움을 찾으려는 소시민적 경향이 강해진 것도 한몫했을 성싶다. 아보하는 매우 논쟁적인 트렌드이기도 하다. 관점에 따라서 아보하는 '아주 보석 같은 하루 vs 아주 보람 없는 하루'로 평가받을 수 있는 길항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보하 트렌드는 '12·3 비상계엄' 사태로 허물어졌다. 비상계엄 사태는 국민의 평온한 일상을 뒤흔들어 놓았다. 당일 밤 가족과 지인의 안부를 묻는 전화 통화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문자메시지가 쏟아졌고, 시민들은 불안한 마음에 귀가를 서둘렀다. 45년 만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다수 국민은 극도의 공포감을 느꼈다. 특히 생방송을 통해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무장한 계엄군이 진입하는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은 자기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후 우리의 일상은 '아주 특별한 하루'가 됐다.



실제로 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 삶뿐만 아니라 나라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정치 난맥에 안보·치안 공백, 경제 위기까지 겹치면서 누란지위(累卵之危)에 놓여있다. 정치권은 벌써부터 대선을 겨냥한 극한 대립을 하고 있다. 군경(軍警) 수뇌부들의 동시 구속으로 안보·치안은 불안한 상황이다. 경제는 그야말로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형국이다. 지금은 동시다발적 국난을 수습하기 위해 정치권뿐만 아니라 국민도 그 어느 때보다 냉철해야 할 시점이다.

jongwo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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