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약 440년쯤 전인 1578년 코사크(Казаки) 기병대가 우랄산맥을 넘어 시베리아를 개척했다. '돈 코사크 무리에서 일어나는 아우성…' 운운하던 '스텐카 라진의 노래'에 나오는 '돈 코사크'가 바로 이들이다.
미하일 숄로호프에게 1965년 노벨 문학상을 안겨준 '고요한 돈강'(Tikhii Don)의 바로 그 돈강에서 반란을 일으킨 코사크족 기병대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코사크는 모스크바 대공국의 지배에서 이탈한 농민들이 돈강변에 모여들어 형성한 군사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은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여러 도시를 만들었는데 1625년에 이들 기병대의 기지가 안가라강의 지류인 이르쿠트강 입구에 건설됐다. 나중에도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안가라강은 거대한 바이칼 호수에서 유일하게 흘러 나가 레나강에 합쳐져 북극해로 흘러가는 큰 강이다. 수자원이 풍부하고 배후에는 목초지도 무한정으로, 먹을 것 걱정이 별로 없는 지리적 배경을 만들어 주었다.
1686년에 제정 러시아 정부는 이를 도시로 인정했고 이후 동시베리아 지역의 산업중심지로 급속히 발전했다.
그러니까 1825년에 데카브리스트(러시아 제국에서 일부 청년 장교들이 입헌군주제 목표로 봉기했고 유럽의 자유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장교 집단을 통칭해 부르는 말)들이 여기 온 것은 이 도시가 이미 시베리아의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을 때였다.
지금도 안가라강에 세워진 수력발전의 풍부한 전력으로 이 도시는 전기요금이 가장 싸고 모든 도시난방을 전기로 하고 있다. 이 또한 이 지역에 경공업이 발전한 원동력이 됐다.
최근에 우리 우주선 나로호의 발사체를 제공한 러시아의 우주 연구 프로젝트 이름이 '앙가라 프로젝트'였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러시아인들이 안가라강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만한 단서가 된다.
이르쿠츠크라는 이름은 안가라강의 지류인 이르쿠트강에서 온 것이다. '이르쿠트'는 부랴트(Буриад, 자치공화국)말로 '거센','사나운', 그런 뜻이다. 우리가 묵은 앙가라 호텔은 이 안가라강의 이름을 딴, 시내에서 가장 크고 좋은 호텔로서 시 중앙의 키로프광장에 있어 시청사, 주 정부 청사, 중앙은행 지점, 국립외국어대학 등과 마주 보고 있다.
바이칼 주, 부랴트 자치공화국의 행정수도는 울란우데라는 곳이지만 여기에 주 정부와 국립중앙은행 지점, 그리고 국립 외국어대학, 국립경제대학, 공과대학 등이 몰려있다. 이것만 봐도 이 도시가 이 지역 문화, 산업, 금융의 중심지임을 알 수 있다.
시민의 평균 연령이 36세라고 하니 겉보기로도 활기찬 젊은 도시이고, 미인들이 많기로도 유명하다. 원래는 당연히 부랴트족의 본거지였지만 지금은 대부분 러시아계 인종들만 눈에 띈다.
키로프 광장은 러시아혁명 후 이 도시에 살다가 암살당한 혁명당원 '키로프'의 이름을 딴 것인데 러시아에서는 유명했던 사람으로 키로프 발레단 등 다른 데서도 그의 이름을 많이들 따오고 있다. 주 정부 청사는 근대건축 양식으로, 그 이전에 그 자리에는 시베리아 지역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카잔스키 교회가 있던 자리였다고 하는데 스탈린이 전국의 교회를 모두 때려 부술 때 없어지고 그 자리에 세워진 것이다.
주 정부 청사에서 바로 보이는 아름다운 스빠스까야(Сласская) 교회는 1710년 준공돼 동시베리아에서 지금까지 가장 오래되고 가장 잘 보존된 교회 건물이다. 건물 외벽 삼면에 그려진 벽화가 유명한데, 가운데 예수상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이곳 원주민인 부랴트족의 세례식 장면이고, 오른쪽은 이르쿠츠크 최초 성자의 모습을 그렸다.
즉 동방정교의 동시베리아 전교를 기념하고 있다. 한마디로 슬라브 민족이 이곳 원주민인 부랴트족을 종교로써 복속시켰다는 의미이고, 말을 바꾸자면 그들의 생활 터전을 빼앗아 자기네 땅으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러시아 제국은 몽골, 돌궐, 말갈, 부여, 예맥, 선비, 여진 등 우리 몽고점 사촌들이 마음껏 뛰놀던 이 대평원에 코사크 반란자들을 보내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유형의 죄수들을 보내어 식민지를 개척한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시베리아를 차지했다. 지구상에 가장 넓은 땅, 자원의 보고, 아름다운 자작나무의 끝도 없는 수림대와 지평선이 안 보이는 검은 흙의 비옥한 목초지를 앉아서 그냥 차지한 것이다.
지금 러시아 사람들이 부랴트 자치공화국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이 부근에 성당이 다섯 개나 있었다는데 이르쿠츠크의 대화재 때 소실됐고 그 자리에, 폴란드에서 이주해 온 가톨릭 신자들의 성금을 바탕으로 성당이 다시 세워졌다. 그래서 림스키 성당의 첨탑 꼭대기에는 라틴 크로스 모양의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폴란드 이주민들이 특별히 이곳에 많았고 그들이 자신들의 종교인 로마 가톨릭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애를 썼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아마도 그들은 나폴레옹 군대를 추격하여 파리에 입성했던 러시아 군대의 퇴각 조건으로 할양된 폴란드에서 새 주인이 된 러시아 황제의 강요로 이곳까지 강제로 이주당하여온 가톨릭 교도들이 아니었을까?
하여튼 그것은 서울에 돌아가 책을 들추어 보아야 알 일이고, 림스키 성당은 드넓은 시베리아 지방에서 유일한 가톨릭 성당으로, 내부에는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돼 현재는 자주 오르간 연주 등 음악회가 열린다. 미사가 열린다기도 하고 음악당으로만 쓰인다고도 하고 설명이 엇갈리는 것을 보면 아마도 신자 수도 그렇고, 신부 수도 그렇고, 이제는 그저 공소 정도로 쓰이는 것은 아닌가 보였다.
주 정부 청사의 뒷면은 제2차 대전의 기념광장으로 꾸며져 있다. 이르쿠츠크 시민 21만명이 전쟁에 나갔는데 그중 5만명이 돌아오지 않았다. 이들의 이름을 일일이 새긴 벽면을 배경으로 광장을 가로지르면 '꺼지지 않는 불'이 타오르고 있다.
이 불은 또한 대전 중 독일 파시스트와 싸우다 죽은 시베리아의 용사들을 기리는 불로, 모스크바 크렘린의 무명용사 묘에서 채화해 릴레이로 가져왔다. 제단에는 싱싱한 꽃다발이 즐비하다. 사연인즉슨 결혼식을 마친 모든 신혼부부가 이곳에 와서 자신들의 사랑도 이 꺼지지 않는 불처럼 계속하기를 기원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단의 네모난 주변에 시베리아 각지 소수민족의 기념 석판이 설치되었는데 그중에는 코리아, 즉 시베리아 출신 고려인들의 명복을 비는 것도 있어 인상적이었다.
거기 묻은 흙을 북한에서 가져왔다고 하니 반갑기도 하다.
바이칼에 가기 위해 이르쿠츠크에 꼭 들러야 하는 이유는 물론 이 공항이 이 부근에서는 가장 크고 목적지에 가까워서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가 에베레스트나 마추픽추에 갈 때 고지 적응이 필요하듯이 여기서도 러시아에 대한, 그러고도 시베리아에 대한 적응이 조금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입국 수속에만 한 시간 이상이 걸리는 비능률적 사회제도와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십년이 훨씬 더 지나고도 여전한 사회주의의 전체주의적인 분위기에도 이해와 적응이 필요하다. 또한 일단 이 도시를 떠나 광활한 시베리아의 스텝 지대로 들어서면 우리가 타고 있는 한국제 버스 바깥에는 아무런 현대문명의 이기를 기대할 수 없다는 점에도 동의해야 한다. 교통, 숙박, 음식, 위생 등 모든 관광 인프라는 열악하다.
물론 그게 불만이라면 바이칼에는 못 가는 것이다.(계속)
김원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
▲독립기념관·코엑스·태백산맥기념관·국립국악당·통일연수원·남양주종합촬영소 등 설계. ▲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삼성문화재단 이사, 서울환경영화제 조직위원장 등 역임. ▲ 한국인권재단 후원회장 역임. ▲ 서울생태문화포럼 공동대표.
* 자세한 내용은 김원 건축가의 저서 '행복을 그리는 건축가', '꿈을 그리는 건축가', '못다 그린 건축가'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