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복귀시 처단' 포고령에 들끓는 의료계…의정대화 수렁으로(종합)
연합뉴스
입력 2024-12-04 16:07:26 수정 2024-12-04 16:07:26
가톨릭의대 교수협 비대위 "의사가 반국가 세력인가…즉각 내려오라"
의협이사 "자유 대한민국 맞나"…전공의들 "충격적, 누가 돌아가겠나"


윤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 관련 뉴스(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3일 서울역에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다. 2024.12.3 pdj6635@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잔디 오진송 권지현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선포한 비상계엄이 국회 저지로 155분 만에 무산됐지만, 계엄 선포 직후 계엄사령부의 포고령에 담긴 '이탈 전공의 등 복귀' 내용을 두고 의료계 분노가 들끓고 있다.

전공의 등 의료인에 대한 조치가 담긴 포고령으로 인해 의대 증원이 촉발한 의정갈등은 여야의정 협의체 좌초에 이어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모양새다.

의료계는 계엄사령부가 포고령에서 전공의를 콕 찍어 '위협'을 가했다고 보고 윤 대통령의 퇴진 요구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계엄사령부는 제1호 포고령에서 "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 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고 했다.

의료계는 전공의들이 이미 사직 처리됐으므로 파업 중이거나 현장을 이탈한 상황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서 계엄사령부가 '처단' 등의 표현을 사용한 데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 의대 교수들 '처단' 발언 문제 제기…"하야" 한목소리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와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4일 공동성명을 내고 "윤석열과 대통령실 참모진, 교육부와 보건복지부 관련자들은 당장 자진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특히 "사직 전공의들이 아직도 파업 중이라는 착각 속에, 복귀하지 않으면 처단하겠다는 망발을 내뱉으며 의료계를 반국가 세력으로 호도했다"며 "국민을 처단하겠다는 언사를 서슴지 않는 건 정권이 반국가 세력임을 자인한 것"이라고 규탄했다.

가톨릭의대 교수협의회 비대위도 성명에서 "더욱 놀라운 건 계엄포고령에 의사들을 처단 대상으로 명시한 것"이라며 "의사가 반국가세력이냐"고 반문했다.

이들은 "윤 대통령을 더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 즉각 그 자리에서 내려오라"며 "내란죄를 범한 것에 대한 합당한 죗값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최안나 대한의사협회(의협) 기획이사이자 전임 집행부 대변인은 "대통령의 우격다짐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전공의를) 국가 전복을 꾀하는 내란 세력으로 간주해 '처단'하겠다는 이 나라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맞다고 생각하느냐"고 되물었다.

의사협회장 보궐선거에 나선 후보 5명도 한목소리로 윤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즉각 퇴진을 요구했다.

비상계엄 사태 지나간 국회(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가 해제한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시민들이 윤 대통령 규탄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12.4 yatoya@yna.co.kr

◇ 전공의들 "협박하는데 누가 돌아가겠나"…전공의 모집 '파행' 우려

전공의들의 반발도 거세다. 오히려 의료현장으로의 복귀는 더욱더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고 봤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계엄포고령이 복귀하려던 전공의들의 발길마저 돌려세웠다는 평마저 나온다.

사직 전공의 A씨는 "마치 전공의들 때문에 계엄포고령을 내린 것처럼 쓰여 있지 않느냐"며 "대체 처단은 무슨 의미냐. 저렇게 무섭게 협박하는 데 누가 돌아가겠느냐"고 비판했다.

또 다른 전공의 B씨 역시 "계엄령에 전공의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다는 게 충격적"이라며 "사태 해결에 의지가 없는 줄은 알았는데 진짜 우리를 반국가세력으로 보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대위원장은 포고령을 '위협'으로 규정하고 "'처단'이란 단어 선택은 법적·군사적으로 강력한 제재를 가해 청년들을 굴복시키겠다는 윤 대통령의 의지의 표현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이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걱정한다면 그리고 대통령으로서 일말의 책임감이 남았다면, 지금이라도 모든 의료 개악을 중단하고 조속히 그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촉구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날 시작되는 내년도 상반기 전공의 모집도 파행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지역의 전공의 C씨는 "비상계엄 선포 후 분위기가 좋지 않다"며 "내년 3월에도 (전공의들이) 돌아갈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시내 한 수련병원 관계자는 "전공의 일부는 병원에 돌아와 수련을 재개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있었을 텐데, 현 상황에선 과연 누가 지원을 하겠느냐"며 "지원율이 높지 않을 것 같다"고 전했다.

결국 의정갈등 장기화 국면에서 윤 대통령이 '악수'를 뒀다는 데에는 의료계 내부의 이견이 거의 없어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대 교수는 "가뜩이나 사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전공의 운운하는 계엄포고령까지 내렸으니 앞으로 대화가 되겠느냐"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jand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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