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부지 부녀의 따뜻한 가족 탄생기…영화 '스크래퍼'
연합뉴스
입력 2023-09-21 07:00:01 수정 2023-09-21 07:00:01


영화 '스크래퍼' 속 한 장면[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샬럿 리건 감독의 영화 '스크래퍼'는 나이지리아의 유명 속담을 화면에 띄우며 시작한다. 아이가 제대로 된 어른으로 성장하려면 사회 전체가 나서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12살 소녀 조지(롤라 캠벨 분)는 이 문장에 줄을 죽죽 긋고는 이렇게 쓴다.

'나는 내가 키울 수 있다.'

조지는 보란 듯 집안일을 혼자서 척척 해낸다. 그의 엄마는 얼마 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보호시설에 가기 싫은 조지는 삼촌이 있다고 거짓말하고 홀로서기를 시작한다.

하나뿐인 친구 알리와 훔친 자전거를 내다 팔아 생계를 이어가던 조지에게 갑자기 낯선 남자 제이슨 (해리스 디킨슨)이 찾아온다. 젊고 잘생겼지만 철없어 보이는 그는 자신이 조지의 아빠라고 말한다.

뮤직비디오 제작자 출신인 리건 감독의 첫 장편영화 '스크래퍼'는 갑작스레 함께 살게 된 철부지 부녀의 이야기다. 완전히 다른 것 같지만 실은 똑 닮은 두 사람이 가족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잔잔하고 따스하게 그렸다. 올해 열린 선댄스영화제 월드시네마 드라마 부문 심사위원대상작이다.

영화 '스크래퍼' 속 한 장면[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조지와 제이슨은 서로를 만나기 전 불안정하고 외로운 삶을 살았다. 보호자도 없이 빈민가에서 지내는 조지는 물론이고 스페인에서 클럽 티켓을 팔며 살던 제이슨에게도 가장 필요한 것은 집과 가정이었다.

물론 둘의 동거는 순탄치 않다. 조지는 자신과 엄마를 떠난 제이슨을 원망한다. 더구나 제이슨은 아버지로 여길 만큼 믿음직스럽지도 않다. 하지만 제이슨은 나름대로 밀린 아빠 노릇을 하면서 딸에게 다가간다.

둘은 함께 동네 악동 짓을 하며 점차 친해진다. 자전거를 훔치고 모르는 사람을 골탕 먹이며 낄낄대는 모습은 부녀라기보다는 친구 같다.

어린 딸과 젊은 아빠의 좌충우돌을 그렸다는 점에서 샬럿 웰스 감독의 '애프터썬'(2023)의 설정과 비슷하지만, 분위기는 한층 가볍고 위트 있다. 조지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은 동화적으로 표현됐다. 군데군데 만화 같은 효과를 넣어 판타지물의 느낌도 난다.

영국 노동자 계급과 복지 사각지대 등 사회 문제에 대한 고발적 시선도 옅게나마 유지한다. 리건 감독이 어릴 적 살았던 마을과 당시의 경험을 떠올리며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그는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가장 큰 원동력은 노동 계층의 이야기 속 유머를 담아내고 싶다는 충동이었다"며 "내가 자란 곳에는 분명 힘든 순간들이 있었지만 기쁨과 사랑은 절대 흔들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27일 개봉. 84분. 12세 이상 관람가.

영화 '스크래퍼' 속 한 장면[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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