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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에너지는 풍요의 약속일까?…신간 '저주받은 원자'

연합뉴스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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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1945년 원자폭탄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됐을 때, 전 세계는 그 압도적인 힘에 경악했다. 익히 알려진 대로 두 도시 모두, 원자폭탄의 엄청난 파괴력에 전무후무할 정도로 초토화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후 공포의 대상이었던 원자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욕망의 대상으로 전환됐다. 미국이 집중적으로 원자력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하면서다.

미국 정부와 과학계는 원자력이 환경오염을 일으키지 않고도 막대한 에너지를 양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핵분열 부산물로 나오는 방사선을 쬐면 해충과 세균을 사멸시켜 주요 식품의 유통기한을 늘릴 수 있다고도 했다. 생태계, 비료, 인체의 신진대사를 연구하는데도 방사선은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제시한 청사진 속에 원자력 기술은 세상을 빠르게 앞당기는 신기술로 주목받았다. 각국은 너도나도 원자력 기술 개발에 뛰어들었다. 특히 제국주의 시절, 피지배의 아픈 기억이 있는 저개발 국가들이 기술도입에 적극적이었다.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53년 핵기술 공유를 골자로 한 '평화를 위한 원자력'(Atoms for Peace) 계획을 발표하면서 이들 국가의 기대에 부응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약 70년이 지난 현재, 미국이 제시한 '원자력 월드'의 청사진은 실현됐을까?

[EPA=연합뉴스. 재판매 및 DB금지]

제이콥 햄블린 미국 오리건주립대 역사학과 교수는 최근 번역돼 출간된 '저주받은 원자'(원제: The Wretched Atom)를 통해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나아가 "원자의 이상향적 경로는 분명히 디스토피아적으로 선회했다"고 강조한다.

저자에 따르면 원자력 분야는 지난 수십 년간 세간의 주목을 받은 원자로 사고, 폐기물 처리 논쟁, 방사선 피폭, 반핵활동가 단체의 부상, 정부 기관에 대한 대중의 신뢰 저하 등에 시달렸다.

또한 수많은 개발도상국이 부국강병을 꿈꾸며 핵기술을 채택했지만, 전문성, 장비, 연료 등의 관점에서 미국과 서유럽에 의존하게 됐다. 기술 종속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족쇄'를 차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지구적 권력을 획득했다. 1950∼60년대에는 방사성 동위원소를, 1970년대 이후에는 원자로 기술을 활용해 각국의 핵무기 프로그램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원자력의 원료인 우라늄과 토륨 시장을 장악했고, 석유 자원 확보에도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같은 저자의 주장은 탈식민주의 대표 작가 프란츠 파농을 떠올리게 한다. 파농은 주저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The Wretched of the Earth)을 통해 프랑스의 기술 이전이 알제리의 경제 발전을 견인한 듯 보이지만, 실은 식민주의를 고착시켰다고 비판한 바 있다.

저자는 파농이 지적한 기술 종속에 따른 신식민주의가 원자력 분야에서도 벌어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가 책 제목에 파농의 책에서 따온 '저주받은'(Wretched)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다.

저자는 "지구적 핵질서는 가난한 국가들을 부상시키는 대신 식민지기를 떠올리게 하는 방향으로 구조화된 것처럼 보인다"며 "평화적 원자라는 약속을 미국이 주도하며 다른 수많은 국가를 포함한 정부들이 분명히 활용하고 오용하며 착취했다"고 비판한다.

너머북스. 우동현 옮김. 488쪽. 3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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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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