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이슈] 우크라이나 여성 덮친 '전시 강간' 범죄








(서울=연합뉴스) 러시아군이 점령했던 지역에서 발생한 성폭력 범죄로 우크라이나 여성들이 공포에 떨고 있는데요.
러시아군이 근래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으로 퇴각한 가운데 키이우 외곽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전시 강간 피해사례들이 보고되는 등 러시아군의 광범위한 성폭력 범죄의 정황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지난달 28일(이하 현지시간) 러시아군에게 성폭행을 당한 우크라이나 피해자의 첫 증언을 공개했습니다. 키이우 외곽인 브로바리의 작은 마을에서 남편 안드레이(35), 아들 올렉시(4)와 살던 나탈리아(33·가명)가 참상을 전했는데요.
먼저 그녀는 지난달 9일 집에 들이닥친 러시아군 두 명이 다짜고짜 남편을 향해 "나치"라고 욕하면서 총을 쏜 뒤, 자신의 머리에도 총을 들이댔다고 합니다. 그런 뒤 "조용히 하지 않으면 아들을 데려와 집안 곳곳에 흩어진 엄마의 뇌를 보여주겠다"고 협박하면서 두 명이 번갈아 강간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러시아 측이 사건의 책임을 회피하고 러시아 병사들이 성폭행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부인하는 것을 보며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영국 가디언은 3일 러시아군이 점령지에서 퇴각하면서 전시 강간의 증언들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며 집단 성폭행은 물론 심지어 자녀가 보는 앞에서 강간을 저질렀다는 증언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글로벌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성명을 통해 "2월 24일부터 3월 14일까지 러시아군이 점령했던 체르니히우, 키이우 등 지역에서 성폭행을 비롯한 전쟁 범죄를 저지른 사례들이 보고됐다"고 밝혔습니다.
사진작가인 미하일 팔린차크가 키이우에서 20km 떨어진 한 고속도로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갈색 담요 아래에 민간인 남성 1명과 벌거벗은 여성 2∼3명이 숨져 있었으며 이들 신체 일부는 불에 탄 상태였다고 합니다.
가디언은 해당 사진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민간인을 상대로 처형, 강간, 고문 등을 자행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전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키이우 거주 여성운동가 안토니나 메드베드추크(31)는 가디언을 통해 "피란 가기 전 신변 보호를 위해 가장 먼저 챙긴 것은 콘돔과 가위였다"면서 "매일 전투가 끝나고 통금 전 휴전 시간에 기본 구급 용품 대신 응급 피임약을 찾아다녔다"고 말했습니다. 신변 보호를 위한 자구책을 마련하려 한 것입니다.
성폭행 가해자는 러시아군뿐만이 아니었는데요. 우크라이나 경찰 당국은 자국 서부 빈니차 마을의 한 교사를 학교 도서관에서 강간하려던 자국 국토방위대원을 체포했다고 밝혔습니다.
전시 강간은 지난 1998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관한 로마 규정'에 따라 전쟁범죄로 규정됐습니다. 우크라이나 당국과 ICC는 보고된 성폭력에 대해 수사를 개시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우크라이나에서 전시 강간을 저지른 러시아군에 대한 사법 정의 실현의 가능성은 희박해 보입니다. ICC가 설립된 이래로 전시 강간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린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2016년 내렸던 유일한 유죄 판결도 2년 만에 항소로 뒤집혔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피해자 보호인데요.
전쟁이 발발한 후 난민 여성과 소녀들을 도와온 단체 '페미니스트 워크숍'의 사샤 칸서 리비우 지부 담당자도 성폭행 피해자들이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며 "러시아가 강간을 군사 전술로 사용함으로써 앞으로 우크라이나 사회 전반에 깊은 고통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담당자는 "여성들이 도망가면 강간범과 총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안전한 것처럼 보이지만, 트라우마는 평생 피해 여성들을 따라다닐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인교준 기자 박혜영 인턴기자
kji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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