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상의 한국 '패싱'(열외취급)이 도를 넘고 있다.
모테기 외무상은 한일 간 최대 현안인 징용 및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한국 법원의 배상 판결이 한일청구권협정 등에 배치돼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라며 한국 정부가 이 판결을 시정할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이런 입장에 근거해 올해 취임한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의 전화통화는 물론이고 새로 부임한 강창일 주일 한국대사와의 면담도 거부하고 있다.
모테기 외무상은 23일 오후 정례 기자회견에서 일본 기자의 한국 관련 질문을 사실상 묵살하는 행태까지 보였다.
이날 회견에서 아사히신문 기자가 '주권면제'를 인정해 일본 정부의 배상책임을 부인한 서울중앙지법의 지난 21일 위안부 소송 판결이 한미일 협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와 이 판결을 계기로 3국 간 협력을 어떻게 추진해 나갈 것인지를 물었다.
아사히 기자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16일(미국 현지시간) 백악관 정상회담을 마치고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한미일 3국 간 협력을 언급한 점을 거론하면서 이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모테기 외무상은 난해하다고 볼 수 없는 이 질문에 "미안하지만 질문 취지를 잘 모르겠다"고 반응했다.
모테기 외무상은 아사히 기자가 거듭 "21일 위안부 소송 판결이 나왔잖아요"라고 하자 "그건 알고 있다. 그리고 미일 정상회담에서 한미일 협력, 협력을 도모해 나가는 일, 이런 것의 중요성을 표명한 것은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런 질문을 하는 의미를 모르겠다"고 '모르쇠' 답변으로 일관했다.
이에 아사히 기자가 어이없어하는 목소리로 "(내 질문은) 말 그대로입니다만"이라고 대꾸했고, 모테기 외무상은 "약간 내 사고(思考)를 넘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말을 이어갔다.
모테기 외무상은 "만약 (질문을) 해설해 준다면 이러이러한 것으로 영향이 생길 것 같은데,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내가 몰라서,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그 설명을 해 주면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횡설수설했다.
모테기 외무상은 기자회견 자리에서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질문을 하는 기자에게 면박을 주거나 엉뚱한 답변으로 상대방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이날 아사히 기자의 질문을 묵살한 모테기 외무상은 지난 21일 중의원(일본국회 하원) 외무위원회에선 서울중앙지법이 일본 정부의 주장과 궤를 같이하는 판결을 한 것에 대해 "이 판결이 일본 정부 입장을 근거로 한 것이라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국가로서 국제법 위반을 시정해야 한다. 한국 측의 전향적인 제안을 기대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한편 아사히신문은 이날 자 사설에서 "신임 한국 외교부 장관이나 주일(한국)대사를 냉대하고 각료들에 대한 예방이나 회담을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는 외교적으로 치졸하다. 난제가 있기 때문에 더욱 직접 이야기하는 성숙한 이웃 나라 관계를 명심해야 한다"고 모테기 외무상을 겨냥하는 듯한 논평을 했다. (취재보조: 무라타 사키코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