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로 불러낸 악령과 웅장한 구마의식…뮤지컬 '검은사제들'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김윤석·강동원 주연의 영화로 익숙한 '검은 사제들'이 공연이라는 현장감을 덧입고 무대 위에 펼쳐진다.

창작 뮤지컬 '검은 사제들'은 2015년 개봉해 관객 544만여명을 모은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줄거리는 원작을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공연이라는 장르의 변형으로 영화와는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이야기는 악령에 빙의된 고등학생 '영신'과 가톨릭 교단의 반대 속에서 영신의 몸에서 악령을 떨쳐내는 구마(엑소시즘) 의식을 진행하려는 '김신부', 신에 대한 믿음보다는 동생에 대한 속죄로 신학교에 들어간 신학생 '최부제' 세 사람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뮤지컬은 제작 단계부터 악령이나 영혼, 사후세계 등을 다루는 '오컬트'(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신비적·초자연적 현상) 장르를 어떻게 무대 위에 구현해낼지 관심을 모았다.
영화가 전반적으로 어두운 배경에 검은색의 채도를 높이고, 노란빛을 비춰 공포 분위기를 만들어냈다면, 뮤지컬은 보랏빛 조명에 스모그 효과로 음침하지만 성스러운 느낌을 끌어낸다. 특히 짙은 조명 아래 천천히 피어오르다 사라지는 연기는 신비하면서도 기괴한 느낌을 줘 관객들의 불안감을 가중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여기에 더해 사제들의 합창과 종교적 색채가 강한 선율의 음악은 영화에서 느끼기 어려웠던 전율을 선사한다. 구마 의식에 사용되는 종소리와 마귀의 목소리에 겹쳐지는 효과음, 기도문을 읊는 소리 등도 극의 몰입감을 높인다.
무엇보다 무대 위 악령의 퍼포먼스는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악령을 거부하려는 영신과 그의 몸을 지배하려 드는 악령, 이 둘이 뒤섞여 펼쳐내는 안무는 어떠한 특수효과보다도 악령의 존재를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천장이 높은 무대를 이용해 영신을 아래에, 악령을 위에 배치한 이층 구조도 악령에 씐 인간의 모습을 잘 형상화한다.
검은색과 붉은색이 뒤섞인 의상의 악령은 마치 한 명의 인물로 표현되다가도 앙상블의 군무로 변하면서 관객들에게 혼란과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극의 중간중간 소스라치게 놀랄법한 순간들을 만들어내는 연출도 탁월하다.
그렇다고 뮤지컬은 무서운 분위기만으로 극을 끌고 가지 않는다. 구마 의식에 사용되는 돼지의 꿀꿀거리는 소리, 광선총을 쏘는 사제들의 안무 등 위트가 섞인 장면들은 팽팽해진 긴장감을 완화하면서 극에 재미를 덧붙인다.
공연의 클라이맥스인 구마 의식은 경건하고 신성한 분위기로 진행된다. 의식을 진행하는 이들은 김신부와 최부제, 두 사람뿐이지만 풍성한 음악과 어둠 속 오묘하게 변하는 조명이 마치 대형 성당에 들어와 경건한 의식을 치르는 듯한 웅장함을 뿜어낸다.
이처럼 공포스러우면서도 경건한 장면들이 겹쳐지면서 '검은 사제들'은 무대 공연의 생동감을 제대로 보여준다. 창작 뮤지컬로 600석 규모(1·2층)의 중극장에서 막을 올렸지만, 대극장에서 수십 명의 군무가 곁들여진 공연으로 이어진다면 더 멋있는 장관을 연출할 수 있겠다는 욕심마저 들게 한다.
다만 원작의 내용을 모르고 공연으로 작품을 처음 접한다면, 세세한 이야기를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공연의 특성상 서사가 압축되고, 노래로 전달되는 가사가 완벽하게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공연 전 캐릭터 설명과 인물 간의 관계에 대한 작품 정보를 꼼꼼히 읽는 편이 공연을 즐기는 데 도움이 된다.
공연은 5월 30일까지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진행된다. 관람료는 R석 8만8천원, S석 6만6천원, A석 4만4천원. 중학생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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