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들] 박정희도 못 건드린 선관위, 독립이 부른 무능의 덫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일제 강점기 때 판사 이력으로 친일 인명사전에 등재된 사광욱(1909~1983년) 초대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역설적으로 선관위 독립의 주춧돌을 놓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1963년 1월 선관위 출범 보름 후 그는 "어떠한 권세나 정파와도 타협하지 않으며, 어떠한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고,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첫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며 선관위의 존재 이유를 천명했다.
그의 다짐은 말뿐인 정치적 구호가 아니었다.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선관위를 연두 순시하려 하자, 그는 헌법상 독립기관은 행정부 수반의 순시 대상이 아니라며 거절했다. 1967년 6·8 총선을 앞두고 박 대통령이 선거법 시행령을 개정해 국무위원의 선거운동을 허용하려 하자 사광욱은 헌법 정신을 들어 불가 해석을 내렸다.
하지만 역사는 그의 뜻대로만 흐르지 않았다. 1967년 총선에서 부정선거 의혹이 불거지며 야당인 신민당과 대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재선거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공개투표, 대리투표, 올빼미 투표 같은 말이 생길 정도로 정권에 의해 수많은 불법이 저질러졌지만, 선관위는 정치 중립을 내세워 재선거 요구에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를 명분 삼아 박정희는 "헌법기관인 중앙선관위가 일단 당선공고를 한 이상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선거 자체를 무효화할 수 없다"며 재선거론에 쐐기를 박았다. 야당인 신민당도 장외투쟁을 하다 박정희로부터 '재선거 실시 지역에 공화당 후보 불출마' 카드를 받고 등원했다.

그로부터 59년이 흐른 지금, 선관위는 헌법상 권력을 맘껏 누려오다 창설 이래 최대 위기에 놓였다. 소쿠리 투표, 간부 자녀 특혜 채용으로 국민의 지탄을 받는 와중에 6·3 지방선거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터지며 조직 해체 여론까지 일고 있다. 선관위는 그동안 여러 차례 관리 부실로 비판받아 왔지만, 이번 사태가 주는 충격은 이전과는 결이 다르다. 투표용지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는 무능을 노출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 조직에 스스로의 잘못을 바로잡을 자정 능력이 아예 없다는 점이다. 사광욱이 닦아놓은 독립성이라는 가치가 외부의 감시 요구를 차단하고 내부의 비리를 비호하는 폐쇄성의 명분으로 변질된 것과 다름없다.
투표용지는 단순한 종이 한 장이 아니라 유권자의 의사가 반영되는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다. 국민주권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투표용지 한 장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조차 선관위는 망각했다.
선관위가 조직의 표상으로 삼는 사광욱의 뜻을 진정으로 계승하려 한다면 독립 선언을 넘어선 결단이 필요하다. 국민 여론을 존중한다면 외부의 감시 시스템을 받아들여야 한다. 선관위의 독립성은 엄격한 감시와 끊임없는 내부 시스템 혁신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실체적인 힘을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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