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물꼬 이재용 상생 리더십…정부와 벼랑끝서 파업 막아

(서울=연합뉴스) 조성흠 기자 = 삼성전자 노사가 총파업일을 불과 1시간 반 앞두고 극적으로 합의안을 도출하면서 최대 100조원대로 추산된 천문학적 규모의 피해를 면할 수 있게 됐다.
정부가 마지막까지 중재를 포기하지 않은 가운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사태 막판 노사 화합을 당부하는 등 상생 경영의 리더십으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돌파하는 데 디딤돌을 놨다.
앞으로 이 회장은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대응할 기술 경쟁력 강화와 신성장 동력 발굴에 집중하는 한편, 이번 사태의 후유증 해소와 선진적 노사관계의 안착이라는 숙제도 풀어야 한다.

◇ 이재용, 파업 위기 속 회장 취임후 첫 대국민 사과
2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사는 예정된 파업 전날인 지난 20일 밤 영업이익의 10.5%를 재원으로 하는 반도체 특별경영성과급 신설을 골자로 한 임금협상 잠정 합의안을 마련했다.
이로써 지난 5개월여의 노사 협상이 노조 투표만을 남겨두게 됐지만, 이번 합의 직전까지 회사는 파업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기도 했다.
세 차례 정부 조정이 실패하고 대화의 문이 닫혀가면서 정부 안팎에서는 2005년 이후 21년 만에 쟁의행위를 금지하는 긴급조정권이 발동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파국의 그림자가 짙어지던 지난 16일 이 회장이 직접 입장을 표명하면서 사태는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이 회장은 "매서운 비바람은 제가 맞고 다 제 탓으로 돌리겠다"며 노사에 한 몸, 한 가족으로 힘을 모아달라고 호소하고 국민과 정부에 고개 숙여 사과했다.
이 회장이 대국민 공개 사과를 한 것은 2015년 6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 2020년 5월 경영권 승계 및 노조 문제 관련 이후 이번이 세 번째고, 2022년 10월 회장 취임 이후 처음이다.
입장 표명 후 곧바로 삼성전자 서초사옥으로 향한 이 회장은 계속해서 노사 대화 상황을 챙긴 것으로 전해졌다.

◇ 노사, 핵심 쟁점서 한발씩 물러나고 소송도 취하
멈춰있던 대화 시계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노사는 지난 18일 중앙노동위원회의 2차 사후조정 회의를 통해 파업 전 사실상 마지막 대화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이 자리에서 노사는 다수 안건에서 의견을 좁혔고, 이어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주재한 마지막 교섭을 통해 한발씩 더 물러선 결과 극적 합의에 도달했다.
사측은 성과주의 인사 원칙에 따라 적자 사업부에 과도한 성과급 지급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으나, 적자 사업부에 대한 성과급 배분비율 삭감 조건을 올해는 적용하지 않기로 예외를 적용했다.
반도체 특별경영성과급에 대해선 상한을 두지 않음으로써 노조 요구를 일부 수용했고, 경영 목표 달성을 조건으로 10년간 제도화 요구까지 받아들였다.
노조 역시 성과급 배분 요구를 영업이익의 15%에서 영업이익 10.5%와 성과인센티브(OPI) 지급으로 조정하고, 적자 사업부에 대해서도 전체 성과급의 70%를 똑같이 나누자는 요구를 40%까지 낮추는 데 동의했다.
노조는 성과급의 자사주 지급 방안도 받아들였다.
아울러 노사는 파업 기간 민형사 소송을 취하하기로 하며 노사관계 회복에 나섰다.
◇ 탄력 받는 '뉴삼성' 리더십…글로벌 경영활동 박차
재계에서는 이재용 회장이 '뉴삼성'의 핵심 가치로 내세운 상생과 동행, 사회적 책임이 이번 합의의 중요한 배경이 됐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이 회장은 2020년 "더 이상 삼성에서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선언한 후 노동계와 소통을 꾸준히 강조했다.
회장 취임 이튿날인 2022년 10월 28일 첫 현장 일정으로 광주의 협력사를 방문한 이 회장은 "협력사가 잘 돼야 우리 회사가 잘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상생과 동행 철학으로 창사 이래 최대 파업 위기를 넘기면서 이 회장의 '뉴삼성' 리더십도 한층 탄력을 받게 됐다.
이 회장은 지난해 7월 부당합병·분식회계 의혹 사건에서 대법원 무죄 판결을 받은 데 이어 지난달엔 5년에 걸친 상속세 납부 완료로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는 등 승계와 관련된 현안을 사실상 마무리했다.
앞으로 이 회장은 반도체 슈퍼사이클을 맞아 기술 초격차를 확대하고 신성장 동력 발굴에 집중하고자 글로벌 경영 활동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파업 기간 불거진 노사·노노 갈등의 봉합과 성과 보상 체계의 선진화는 이 회장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게 됐다.
조직 간 불공평 논란을 해소하면서도 '성과 있는 곳에 보상 있다'는 원칙을 견지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하고 투명한 보상 체계의 안착이 노사관계 안정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파업 사태 해결에는 이 회장의 '뉴삼성' 리더십이 중요한 발판이 됐다"며 "노사가 한 몸으로 다시 뛸 수 있도록 상생 경영의 철학이 조직 전반에 뿌리내릴 때까지 대화와 소통을 더욱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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