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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AI로 광고·영상업계 풍비박산?…중견업체 잇단 폐업 이유는

연합뉴스입력
AI로 일자리 위협 우려 있지만…"경기침체· 소비심리 위축 영향이 더 커" "AI 빌미로 제작비 깎는 광고주들이 문제" 지적도
'아티잔은 워라벨에 대해 불만하지 않는다'는 도발적인 광고 문구를 내건 AI 스타트업 아티잔의 길거리 광고물. [Getty Images via AFP=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인공지능(AI)으로 광고·영상업계는 말 그대로 풍비박산이 났습니다."

생성형 AI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광고·영상업계가 큰 타격을 입었다는 글이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다.

이 글은 AI로 제작된 올리브유 광고를 예로 들며 과거 다수의 인력이 큰 비용을 들여야 제작할 수 있었던 것을 AI가 쉽고 빠르게 만들어내면서 광고주의 제작비 집행이 줄어들고 이에 따라 업체 폐업이나 인력 감소가 가속화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최근 중견 광고업체들이 잇달아 문을 닫으면서 이런 우려가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실제 AI 때문에 광고·영상업계에서 문을 닫는 회사가 늘어나고 있을까. 업계에서는 AI가 위협이 되고 있지만 최근의 업황 문제는 경기 침체와 소비 심리 위축으로 인한 광고액 감소 등이 결정적 원인이라고 말한다.

구글의 AI 이미지 생성·편집도구인 나노 바나나 프로를 이용해 영문(왼쪽)을 한글로 번역하고 바꾼 결과물[구글코리아 블로그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 중견 광고업체 잇달아 폐업·기업회생…전국 광고 인력 1% 가까이 줄어

10일 광고업계에 따르면 올해 엠포스, 디블렌트 등 중견 광고대행사들이 잇달아 문을 닫았다.

지난 6월 폐업한 엠포스는 25년 업력의 디지털 광고대행사다.

이 업체는 삼성전자, 신한카드, 대우건설, 넥슨, 이마트몰 등 굵직한 기업의 광고 및 마케팅을 대행해왔다.

연초에는 광고 취급액 기준 국내 10대 종합광고회사 중 하나인 디블렌트와 고용노동부 선정 강소기업이었던 광고대행사 디노마드가 각각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다.

또 연간 매출이 700억원에 이르는 광고 대행사 디디비코리아가 외주 업체 등에 수백억원의 대금을 미지급하는 사건이 비슷한 시기에 발생했다.

광고업계 불황은 광고경기전망지수에서도 확인된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KOBACO)의 12월 광고경기전망지수(KAI)는 99.1이다.

KAI는 매월 국내 560여개 광고주에게 다음달 광고지출 증감 여부를 물어 지수화한 것이다. 광고지출이 늘어날 것이라고 보는 업체가 많을수록 100을 넘고 반대면 100 미만이 된다.

올해는 6·8·10·11·12월에 KAI가 100을 밑돌았다.

AI 활용한 영상들12월 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더플라츠에서 열린 'AI콘텐츠 페스티벌'에서 참관객이 촬영본을 AI로 확장한 영상을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광고업계 경영난 원인은 AI?…"신생·소규모 업체 타격"

최근의 광고업계 경영난을 두고 일각에선 그 배경으로 AI를 지목한다. AI로 일자리 감소 위협이 커진 것도 사실이라고 업계에선 이야기한다.

신원수 한국디지털광고협회 부회장은 "18세기 산업혁명 때 공장에 기계들이 들어오면서 수작업으로 하던 업무 프로세스가 완전히 바뀐 것과 같다"면서 "당장 일자리 감소는 아니더라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연구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과거 영상을 제작할 때 기획, 시나리오, 감독, 촬영, 조명, 편집 등으로 나눠서 하던 업무를 이제는 AI를 활용해 한명이 기획부터 편집까지 할 수 있게 됐다.

신 부회장은 "큰 광고 물량을 하고, 좋은 장비와 숙련된 인력이 있는 업체들은 이에 맞춰 단가를 제안할 수 있지만 신생 업체나 소규모 업체는 단가나 일감이 줄어들어 '휴먼 터치'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TV 광고 촬영 현장[게티이미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AI가 광고업 관련 일자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생성형 AI가 이미 노동시장에 미친 영향' 제목 보고서에 따르면 챗GPT가 등장한 지 1년 만에 그래픽 디자인과 3차원(3D) 모델링 프리랜서 수요가 17% 감소했다. 또 글쓰기 직무 관련 채용 공고는 30% 줄었다.

다만 최근의 광고업계 상황은 경기 침체와 소비 감소, 고금리, 달러화 강세 등의 복합적인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AI 확산으로 위기의식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당장의 매출이나 일자리 축소와 연결 짓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최근 문 닫은 엠포스 등 다수의 업체에 대해 잘 아는 한 광고업계 관계자는 "미국 트럼프발 관세 위기와 환율 급등으로 광고주인 기업들이 어려워진 가운데 소비 위축 등이 맞물리며 광고업계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2008년 금융위기 때와 같다고 보면 된다"면서 "이들 기업이 어려워진 건 AI 때문이라기보다는 경영 구조나 유동성 확보 문제가 크다"고 말했다.

뉴미디어 콘텐츠 설루션 업체 크리에이티브멋의 김재민 본부장은 "경기를 많이 타는 업종이어서 프로젝트가 줄어드는 등 영향은 있지만 꼭 AI 때문만은 아니다. AI로 인해 오히려 잘나가는 업체들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광고영상제작사협회 임지영 회장은 "TV 등 기존 레거시 미디어의 광고 시장이 어려워지고, 디지털 미디어로 옮겨가는 등 산업 구조 변화의 영향이 더 크다"면서 "최근 광고주들은 아예 대규모 글로벌 광고나 제작비 1억원 안팎의 소규모 광고에 집중해 중간급 광고가 많이 사라지며 업계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AI에 대한 우려가 미래에 대한 불안을 반영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신 부회장은 "그만큼 미래에 대한 걱정이 큰 것으로 보인다"면서 "젊은 사람들이야 그래도 AI 기술 습득이 쉽지만, 오랫동안 일한 분들이 쫓아가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분석했다.

중견 광고 제작사 대표는 "AI가 아니라 AI를 빌미로 광고 제작비를 깎는 광고주들 때문에 업계가 어려운 것"이라며 "AI로 하면 다 단가를 낮출 수 있는 줄 안다. AI가 아닌 AI 인력의 노동력을 갈아서 만드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챗GPT 로고[EPA=연합뉴스]

◇ 대형 업체만 살아남는다?…AI 영향에 '부익부' 가속화 전망

업계에선 AI 시대가 소형 업체의 어려움을 가중할 것으로 보고 있다.

AI에 잘 적응할 수 있는 큰 업체들이 AI 시대에도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한국광고총연합회가 발표한 지난해 국내 10대 광고사의 취급액은 21조4천610억원으로 전년 대비 3.0% 증가했다.

이는 전체 광고 물량의 87%를 차지하는 것으로, 전년도(83.9%)보다 비중이 더 커졌다.

대홍기획, HSAD 대형 광고사들은 앞다퉈 AI 전담팀을 만들고 산업 변화 대응에 나섰다.

다만 AI가 광고·영상 분야 일자리를 온전히 빼앗아 갈 것인지에 대해선 시각이 엇갈린다.

한 대형 광고사 관계자는 "작년까지만 해도 'AI를 100% 활용해 만든 광고'라는 점을 내세우면 선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이미지였다"면서 "이런 광고가 너무 많아지면서 올해는 오히려 식상한 느낌이 들어 이제는 AI 제작을 내세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광고에서 중요한 것은 완성도이고, 완성도를 높이는 데는 결국 오랜 기간 숙련된 인력이 필요하다"면서 "AI도 결국은 이를 굴릴 사람이 필요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크리에이티브멋의 김 본부장은 "AI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면이 있지만 큰 타격을 줄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제작 현장에 있는 이들이 AI 쪽으로 전환해 강점을 살리고, AI 프로덕션도 생겨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본부장은 "명확한 강점을 가진 회사들이 오히려 더 잘 되며 양극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임지영 한국광고영상제작사협회장도 "컴퓨터그래픽(CG) 같은 후반 작업에선 AI가 많이 활용되나 여전히 기존 방식의 촬영을 잘하는 감독이 AI도 더 잘 활용한다는 것이 업계 평가"라면서 "AI로 단가가 낮아졌다고 하나 이렇게 능력 있는 사람은 더 귀해지고 있어 양극화가 뚜렷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luc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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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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