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말저런글] 서생다운 문제의식, 상인 같은 현실감각?
연합뉴스
입력 2025-05-13 05:55:00 수정 2025-05-13 05:55:00


김대중 대통령 휘호 '사인여천'[촬영 이상학]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 김대중 전 대통령 어록에서 후배 정치인들이 많이 인용하는 내용입니다. 정치인은 이 둘을 다 갖춰야 한다는 게 요지입니다. 하나만 있어서는 좋은 정치를 하기 어렵다고 봤던 것일 테지요.


예전에 글 읽던 선비를 서생이라 했습니다. 그런 서생들이 가진 문제의식은 곧 원칙이자 철학이자 신념이자 소신입니다. 막스 베버가 『소명으로서의 정치』(Politik als Beruf)에서 말한 신념윤리와 비슷합니다. 어느 결정적 순간 "나는, 다른 나일 수 없다" 하며 지켜야 할 그 무엇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없다면 정치인이 아니라 모리배(謀利輩)가 되기 십상입니다.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는 사람. 또는 그런 무리] 말입니다.


서생적 문제의식만 말했다면 어록에 올랐을 리가요. 현실에서 이를 구현하려면 상인적 현실감각이 있어야 하겠지요. 시장에서 가격을 흥정하며 물건을 파는 상인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신념윤리에 맞선 짝으로 베버가 내놓은 책임윤리 개념에 닿아 있습니다. 결과를 고려하는 책임 있는 자세로 원칙을 유연하게 실천하여 이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 이는 서생의 문제의식, 상인의 현실감각으로도 쓰입니다. [-적(的)]이 어색하다고 봐서일까요? 이러든 저러든 뜻은 다 통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우리말답게 쓴다면 [서생다운], [상인 같은]이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원본을 압도하기 어렵습니다. 상인적 현실감각은 말글을 쓰는 데도 필요합니다.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2006년 김 전 대통령의 전남대 특별강연 현장으로 이동합니다. 민주주의에 관한 그의 연설을 들어봅니다. "민주주의는 공것(힘이나 돈을 들이지 않고 얻은 물건)이 없어요. (……) 얼마나 많은 분들이 이 광주에서도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한국 민주주의는 그 뿌리가 튼튼한 겁니다. 이제는 어떤 군부 사람도, 어떤 독재자도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안 하고는 못 배깁니다. 다시 군사 쿠데타 하는 거, 꿈도 못 꿉니다. (……)"



그의 통찰이 끝끝내 틀리지 않아야 합니다. 더 튼튼한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서생적 문제의식들이 정치권에 차고 넘치길 꿈꾸며 [민주주의는 공것이 없다]를 김대중 어록에 추가합니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유튜브 광주MBC 채널 동영상, 시대를 통찰한 김대중 대통령 특별강연 Kim Dae jung speech(2006년) - https://www.youtube.com/watch?v=GBXXJYEJHJs&t=1952s

2.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온라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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