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엑스포츠뉴스 나승우 기자) 김민재의 분데스리가 우승 기념 파티는 깔끔하고 산뜻하게 끝났다. 팀 동료의 맥주 공격을 피해 도망다니면서 맥주 샤워를 하지 않고 깨끗하게 마무리했다.
김민재는 한국 축구 역사상 최초로 유럽 5대리그 중 두 개 리그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금자탑을 세웠다.
나폴리에서 이탈리아 세리에A 정상에 오른 데 이어 바이에른 뮌헨에서 분데스리가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인 최초 기록을 썼다.
뮌헨은 지난 11일(한국시간) 독일 뮌헨의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열린 2024-2025시즌 분데스리가 33라운드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전 종료 후 우승 시상식을 진행했다.
해리 케인과 마이클 올리세의 연속골로 2-0 승리를 거둔 이날 경기에서 김민재는 명단 제외됐다. 지난해부터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기에 우승이 확정된 상황에서 굳이 무리해서 출전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김민재는 경기 종료 후 동료들과 함께 우승 세리머니에 참여했다.
뮌헨은 통산 34번째 분데스리가 우승을 차지했고, 김민재에게는 유럽 무대 두 번째 리그 우승 트로피였다.
지난 2022-2023시즌 나폴리에서 33년 만의 세리에A 우승을 이끌었던 김민재는 이로써 세리에A와 분데스리가, 유럽 5대리그 중 두 리그를 제패한 최초의 한국인 선수가 됐다.
단순히 우승 팀 소속이었다는 상징적 기록만 남은 게 아니다. 김민재는 이번 시즌 뮌헨에서 총 2284분을 뛰며 팀 내 필드 플레이어 중 3번째로 많은 출전 시간을 기록했다.
주축 수비수들이 줄줄이 부상으로 이탈한 상황에서도 시즌 중반까지 거의 매 경기 선발 출전하며 뮌헨 수비의 핵심으로 활약했다.
초반 활약과 달리 시즌 막판에는 아킬레스건 통증과 피로 누적으로 출전 시간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동안 김민재가 보여준 헌신과 공헌이 평가절하될 수는 없었다. 실제로 우승 세리머니에서도 김민재가 차지하는 팀 내 입지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트로피 시상식에서 가장 먼저 메달을 받은 선수는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였다. 노이어는 트로피를 들지 않고 곧바로 토마스 뮐러에게 전달했다. 뮐러는 올 시즌을 끝으로 뮌헨 유니폼을 벗는 리빙 레전드다. 노이어의 선택은 구단을 상징하는 레전드에 대한 예우였다.
이후 해리 케인, 에릭 다이어, 마이클 올리세, 콘라트 라이머가 차례로 트로피를 들었다.
그리고 다음 차례는 김민재였다. 케인과 뮐러가 먼저 손짓했고, 다이어는 장난스럽게 멱살을 잡고 김민재를 앞으로 끌어내며 김민재에게 세리머니 순서를 넘겼다.
김민재는 동료들의 권유에 수줍게 나서더니 이내 환호 속에서 분데스리가 트로피 마이스터 샬레를 높이 들어 올렸다.
불과 며칠 전 ‘김민재 패싱' 논란이 제기됐던 상황과 비교해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앞서 뮌헨은 리그 우승을 축하하는 영상의 썸네일에서 김민재의 얼굴을 제외해 논란을 일으켰다.
팬들 사이에서는 "팀 내 출전 시간 3위인 선수를 왜 배제하느냐"는 비판이 쇄도했고, 인종차별 논란까지 불거졌다.
하지만 이날 세리머니에서는 뮌헨 동료들이 앞다퉈 김민재를 챙겼다. 김민재에 대한 팀 내 신뢰와 존중을 드러낸 것이다. 트로피를 드는 순서로만 봐도 김민재가 뮌헨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입증된 셈이다.
김민재는 행사 막바지 동료들의 맥주 세례를 맞을 뻔했으나 다행히 성공적으로 도망쳐 맥주 샤워를 피했다. 세르주 그나브리가 맥주가 가득 담긴 병을 가지고 김민재에게 살금살금 다가갔으나 김민재가 바로 눈치채고 줄행랑을 쳤다.
계속 맥주 세례를 피해다닌 김민재는 한 방울의 맥주도 맞지 않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경기장을 떠났다.
사실 김민재의 이번 시즌은 녹록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전 이후 아킬레스건 통증이 시작됐고, 이후에도 진통제를 맞으며 경기에 나섰다.
시즌 막바지에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 인터밀란전에서 실수를 범해 비판을 받았다. 리그 우승을 사실상 확정한 이후부터는 출전 시간이 크게 줄었다. 뮌헨은 김민재에게 다가올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을 앞두고 회복 시간을 주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제 김민재는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한다. 오는 6월 미국에서 열리는 클럽월드컵에서 뮌헨은 벤피카, 오클랜드 시티 등과 같은 조에 편성됐다. 김민재는 그때까지 푹 쉬며 클럽월드컵에서도 팀 핵심 수비수로 활약할 예정이다.
쉽지 않겠지만 클럽월드컵에서도 정상에 오른다면 개인 통산 일곱 번째 우승을 달성하게 된다.
김민재는 전북 현대에서 K리그 2연패를 경험했고, 이후 나폴리에서 세리에A 우승, 뮌헨에서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동아시안컵 우승을 포함해 통산 여섯 번 우승을 경험했다.
분데스리가 우승으로 동료들과 행복한 순간을 보낸 김민재가 다가올 클럽월드컵에서 다시 월드클래스 센터백의 면모를 보여줄 수 있을지 기대를 모은다.
사진=바이에른 뮌헨 유튜브, SNS
나승우 기자 winright95@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