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선출 직후 교황청 국무원장에 사임서 맡겨 뒀다"
연합뉴스
입력 2025-02-27 15:05:17 수정 2025-02-27 15:05:17
"건강상 이유로 사임해야 할 경우 대비"…자서전에서 밝혀
"교회는 모두에 열려 있다, 성전환자도 환영…전쟁은 어리석은 일"
"베네딕토 16세는 아버지이자 형님 같은 분"


람페두사에 도착하는 프란치스코 교황(2013.7.8)[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저 역시 이주민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와 조부모님은 수많은 이탈리아인처럼 아르헨티나로 건너가 모든 것을 잃으셨습니다."

즉위 후 바티칸 외부 첫 공식 방문지로 이탈리아 최남단의 람페두사섬을 선택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난민과 이주민에 대해 특히 관심을 기울이는 배경을 자기 뿌리에서 찾았다.

북아프리카 대륙과 백 수십㎞ 거리에 있는 람페두사는 이탈리아 영토여서 유럽행을 꿈꾸는 아프리카 난민의 주요 밀항지다. 람페두사 인근에서는 난민을 태운 선박의 침몰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주민 태운 보트[EPA=연합뉴스 자료사진]

다음 달 13일 국내에 번역 출간되는 공식 자서전 '희망'(가톨릭출판사)에서 교황은 람페두사에 대해 "지중해의 이 작은 섬은 희망과 연대의 전초 기지가 되었지만, 동시에 이주민의 비극과 모순을 상징하는 곳이자, 너무나도 많은 사람의 해상 묘지가 되어 버렸다"고 안타까움을 표명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나 역시 오늘날 버림받은 이들 중 하나가 될 수 있었기에, 내 마음속에는 늘 이런 절박한 물음이 맴돈다. '왜 내가 아니라 그들인가'"라고 고통받는 난민에 대해 연민을 드러낸다.

자서전에는 신학교 시절 만난 이성에게 빠져든 경험을 비롯해 교황의 인간적인 면모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삼촌의 혼인식에서 만난 한 여성의 지적인 매력과 아름다움에 마음이 흔들린 적이 있었습니다. 저 자신도 놀랐고 한동안 그분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 기도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미사 마치고 이동하는 프란치스코 교황(2013.3.28)[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오랜 성찰과 고민과 노력 끝에 마음을 다잡은 그는 여성에게 마음을 뺏긴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오히려 이런 감정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면 그쪽이 더 비정상이었을 것"이라고 돌아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위 후 역대 교황들이 살았던 호화로운 사도궁 관저 대신 교황청 사제들의 기숙사인 산타 마르타의 집을 숙소로 택해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그는 "교황으로 선출되어 처음 교황청 관저에 들어섰을 때, 내 안에서 '이건 아니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고 회고했다.

사도궁 3층에 있는 교황 거처는 넓지만, 입구가 좁았고 사람들이 한 명씩 들어가야 해서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신의 스타일과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그가 사제들과 마주치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신부님들과 함께 지낸 것이 익숙하다"며 교황이라도 홀로 구원받을 수는 없으며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지론을 펼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는 남자[로이터=연합뉴스]

그가 최근 건강이 악화해 입원 치료 중인 가운데 죽음도 소박하게 맞이하겠다는 뜻을 표명한 것도 눈길을 끈다.

"그렇게 저를 위한 모든 장례 준비는 끝났다고 합니다. 교황 장례 예식이 너무 성대해서 담당자와 상의하여 간소화했습니다. 화려한 장례 제대도, 관을 닫는 특별한 의식도 없애기로 했습니다."

교황은 "때가 되면 나는 성 베드로 대성전이 아닌 성모 대성전에 묻히게 될 것"이라며 "지금은 촛대 보관용으로 쓰이는 방에서, 내가 늘 의지하고 교황 재임 중에 백번도 넘게 은총의 품에 안겼던 평화의 모후('성모 마리아'를 의미함) 곁에서 잠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임 교황 265명 중 148명이 선종 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 안치됐으며 나중에 이장된 교황을 제외하면 현재는 91명의 교황이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 묘지에 잠들어 있다.

동성 커플이 원한다면 가톨릭 사제가 이들을 축복해도 된다고 밝힌 교황청 교리 선언문을 2023년 12월 공식 승인하는 등 성 소수자에 대해 비교적 열린 태도를 보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책에서도 이런 시각을 견지한다.

그는 트렌스젠더 단체가 바티칸을 방문했을 때 이들과 악수했더니 자신이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한 것처럼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돌아갔다고 소개하면서 "교회는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다. 이혼한 사람도, 동성애자도, 성전환자도 모두 환영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특히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에 대해 "그들도 하느님의 자녀들"이라며 "다른 신자들과 똑같은 조건으로 세례를 받을 수 있고, 대(代)부모가 될 수 있으며, 혼인성사의 증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어떤 교회법도 이를 금지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책 표지 이미지[가톨릭출판사]

전쟁과 군비 증강에 대한 반대 의사도 명확하게 표명했다.

교황은 전쟁이 남기는 것이 "섬뜩한 (사망·부상·실종자) 통계"라며 "전쟁은 비참함 말고는 아무것도 안겨주지 못하고, 무기는 죽음 외에는 그 무엇도 만들어 내지 못한다. 전쟁은 그저 어리석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의 건강이나 거취에 관해 "교황이 아프기라도 하면 콘클라베의 바람이 조금씩 불어오곤 한다. 하지만 실상 수술을 받을 때도 교황직 사임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그는 만약의 가능성을 고려해 "선출 직후부터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해야 할 경우를 대비해 교황청 국무원장에게 사임서를 맡겨 두었다"고 밝혔다.

아울러 교황으로 선출된 것에 관해서는 "평생 예상하지 못했다"며 "특히 콘클라베가 시작될 무렵에는 더더욱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베네딕토 16세[UPI=연합뉴스 자료사진]

프란치스코 교황은 베네딕토 16세의 갑작스러운 사임 후 교황으로 선출됐지만 전직 교황이 생존한 약 10년간 '두 교황' 시대를 보냈다.

베네딕토 16세의 오랜 개인 비서였던 게오르그 겐스바인 대주교는 이들이 긴장 관계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등 두 교황을 둘러싼 구설도 있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서전에서 전임자에 대해 존경의 마음을 표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제게 아버지이자 형님 같은 분이셨습니다. 우리는 늘 진정성 있는 깊은 관계를 이어왔습니다. 일각에서 우리 관계를 왜곡하려 했지만, 그분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저를 도와주시고, 조언해 주시고, 지지해 주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베네딕토 16세와 프란치스코 교황(2022.8.27)[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이재협·김호열·이창욱·가비노 김 옮김. 524쪽.

sewonl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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