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시위 '키즈버스'서 만난 엄마·아빠 "힘들어도 국민은 모두 한마음"
베이비시터도 함께 집회로…"도저히 안 되겠어서 찾아왔어요"
아기들 손에 응원봉 닮은 장난감…탄핵소추안 가결에 아기 들어올리며 환호
베이비시터도 함께 집회로…"도저히 안 되겠어서 찾아왔어요"
아기들 손에 응원봉 닮은 장난감…탄핵소추안 가결에 아기 들어올리며 환호
(서울=연합뉴스) 이승연 기자 = "됐다, 됐어! 가결이다!"
지난 14일 촛불집회가 열린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오후 5시께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는 소식에 '키즈버스' 주변에 서 있던 부모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표결 결과를 기다리며 키즈버스 밖으로 나와 애탄 마음으로 전광판만 바라보던 젊은 엄마, 아빠들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라는 우원식 국회의장의 말이 생중계되자 저마다 아기들을 하늘 위로 번쩍 들어 올리며 기뻐했다.
탄핵소추안 가결 속보와 함께 키즈버스에서 뛰쳐나온 한 엄마는 아기를 안은 채 한동안 시위대의 노래를 흥겹게 따라불렀다. 지나가는 시민들도 안겨있는 아기를 향해 "파이팅!"이라고 외치거나 웃으며 인사를 했다.
이날 국회 앞에는 영유아와 부모들을 위한 쉼터용 '키즈버스' 2대가 마련됐다. 탄핵집회를 위해 딸의 생후 500일 기념 여행비를 털어 기저귀갈이, 수유를 위한 키즈버스를 운영하겠다는 권순영(44) 씨의 사연이 알려지자 후원금이 모이면서 45인승 버스가 2대로 늘어났다.
100일 된 갓난아기를 안고 있던 베이비시터 고소영(26) 씨는 유모차에 놓인 짐을 뒤적이며 "분유가 너무 차가우니까 핫팩으로 데워야겠다"고 중얼거렸다.
기자가 다가가자 고씨는 "식은 음식은 누구나 안 좋아하지 않나"라며 "아기가 더워하면 잠시 버스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또 들어갔다가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기의 부모님은 제가 오늘 근무를 하지 않겠다고 했으면 시위에 못 나왔을 텐데 제가 근무를 하겠다고 해서 용기를 내셨다"며 "나라를 위해 밖에 나오기 좋은 날씨 아닌가"라며 웃었다.
아기의 부모는 버스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첫째 아들과 함께 집회에 참여하고 있었다.
경북 봉화에서 올라온 권서연(42) 씨는 남편, 소아암을 앓고 있는 9살 아들, 17개월 된 둘째 아들과 함께 집회에 나왔다.
유모차에 앉아있던 두 아들은 모자와 목도리, 담요로 중무장한 상태였다. 옷가지에 덮여 얼굴조차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권씨는 지난 3일 밤 계엄 선포 당시 아픈 아들의 치료가 어려워질까 두려운 마음이 컸다고 했다. 이날 집회에 나온 것도 하루빨리 정상화돼 의료 불안이 잦아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약이 얼마나 남았지?'였어요. 치료받기 위해 어제 올라왔고 원래 오늘은 집에 내려가려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어서 찾아왔어요. 아이가 아프지만 이렇게라도 함께해 힘을 보태야죠"
권씨는 키즈버스 덕분에 집회 현장으로 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생각에 그치지 않고 이렇게 정성 들여 쉼터를 마련해주신 분들께 감사하다"며 "한 후원자분께서 근처 주차도 지원해주셔서 편하게 올 수 있었다"고 했다.
키즈버스 안에 들어가 보니 각종 비상용 액상 분유, 물티슈, 간식, 어린이용 주스 및 과자 등 후원 물품이 쌓여있었다. 히터가 틀어져 내부는 따뜻했으며 아이들이 좋아하는 자장가와 동요가 흘러나왔다.
다른 버스 한대는 여성 전용으로 운영돼 수유를 위한 커튼 등이 비치돼있었다.
오후 4시가 넘어 기온이 내려가자 버스 밖에는 유모차가 일렬로 늘어서기 시작했다.
부모들은 버스 주위에서 집회에 참여하며 노래를 따라부르거나 아이와 손을 잡고 몸을 흔들었다.
버스를 이용하기 전 옆에 있던 다른 엄마에게 유아용 간식을 나눠주던 임주리(36) 씨는 "참여하신 분들이랑 아이들이랑 나눠 먹으려고 챙겨왔다"며 웃었다.
그는 버스에서 수유를 마치고 나오면서 "지난주엔 이동이 불편하고 이런 편의시설이 없어서 오래 있지 못했다"며 "버스 내부가 너무 따뜻하고 기저귀와 기저귀 패드 등이 잘 마련돼있어 아주 편하게 이용했다"고 말했다.
임씨는 "힘들지만 지금은 국민이 모두 한마음 아니겠나"라며 "국가 차원의 문제를 떠나서 개개인의 삶에도 큰 지장을 주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아기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튤립 모양의 장난감이 들려있었다.
11개월 된 딸과 함께 나온 김나래(35) 씨는 "엄마들은 다 아는 유명한 장난감인데 노래도 나오고 불빛도 나온다. 아이돌 응원봉과 비슷하게 생겨서 챙겨 나왔다"며 "오픈카톡방에 들어온 사람들끼리 서로를 확인하기 위해 '튤립이세요?'라고 물어보자고 정하기도 했다"고 미소 지었다.
김씨의 가방은 아기가 갖고 놀 장난감과 각종 먹을거리, 기저귀로 꽉 찬 상태였다. 김씨는 한손에 아기와 가방을 들고 다른 한손으로 기자에게 사진을 찍으라며 튤립 장난감을 들어 보이기도 했다.
김씨의 딸은 인터뷰 내내 지나가는 사람을 보며 웃거나 옹알이를 했다.
그는 "다행히 아이가 사람을 좋아해서 이렇게 북적여도 울지 않고 좋아하는 편"이라며 "조금 더 사람이 모이면 (정치인들이) 겁이 나서라도 가결하지 않을까 싶어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키즈버스 봉사자들도 한숨 내려놓고 안심하는 분위기였다.
키즈버스 운영자 권씨는 "지금 후원금이 많이 들어와 오늘 버스 10대는 빌릴 수 있었던 상황"이라며 "향후 사용처는 후원해주신 분들과 함께 논의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winkit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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