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최현석 유한주 기자 = 한미약품그룹 창업주 고(故) 임성기 회장의 장남 임종윤 한미사이언스[008930] 사내이사가 13일 전격적으로 경영권 분쟁 해소를 촉구해 악화일로로 치닫던 창업주 가족간 분쟁에 전환점이 마련될지 주목된다.
임 사내이사는 이날 오후 5시께 배포한 입장문에서 오는 19일 예정된 주력 계열사 한미약품[128940] 임시주주총회의 철회를 공식 제안하면서 경영권 분쟁의 장기화를 방지하고 회사의 미래를 위해 대주주를 포함한 모든 주주와의 책임 있는 논의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임 사내이사와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 '형제 측'은 한미약품 임시 주총에서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와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을 각각 이사에서 해임하고 박준석, 장영길 이사를 선임하는 방안을 추진하며 신 회장과 모친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 등이 구성한 '4인 연합'과 갈등을 빚어왔다.
임 사내이사가 돌연 임시 주총 취소와 경영권 분쟁 해소를 촉구한 것은 지난 1월 시작된 창업주 가족간 경영권 분쟁이 1년간 지속되면서 공멸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데 따른 것으로 관측된다.
임 이사는 입장문에서 "경영권 분쟁이 지속되면 주주 신뢰는 물론 회사의 안정적 발전에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것"이라며 지금은 계열사 이사진과 모든 주주들이 협력해 그룹의 발전 방향과 주주 가치를 보호할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한미사이언스 주가는 지난 10월 말 5만2천원 선에서 경영권 분쟁 심화와 탄핵 정국 관련 증시 불안정 등 여파로 최근 2만9천원 선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한미사이언스의 연결 기준 3분기 영업이익은 224억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37.2% 줄었고 당기순이익은 173억원으로 44% 감소했다.
한미약품 주총에서 형제 측의 승산이 낮아진 현실적 측면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한미약품 지분 10% 정도를 보유한 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는 이날 박 대표와 신 회장 해임에 대한 근거가 불충분하다고 보고 이들에 대한 해임 건에 '반대'를 결정하고, 이를 전제로 한 사내이사 박준석·장영길 선임 건도 반대하기로 했다.
앞서 세계적 의결권 자문사 ISS와 글래스루이스가 지난 6일 박재현·신동국 이사 해임 안건에 반대한 데 이어 서스틴베스트·한국ESG평가원 등 국내 자문사 4곳도 지난 10~12일 국내 기관투자자들에게 전달한 보고서에서 해임 반대 권고를 담았다.
한미사이언스가 한미약품 지분 41.42%를 보유하고 있지만 국민연금과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가 반대하면 출석 주주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한 이사 해임 안건이 통과될지 의문시된다.
임 사내이사의 제안에도 채 1주일도 안 남은 한미약품 임시 주총이 철회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형제 측이 확실한 의견 통일을 이루지 못한 데다 한미약품도 부정적인 입장이기 때문이다.
임시주총을 개최하는 한미약품 측은 "현재 시점에서 임시 주총 취소를 검토하거나 번복하기에는 물리적, 시간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이미 의결권을 행사(위임)해 준 모든 주주들께 매우 면목이 없는 일"이라며 주총 취소가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임종훈 대표의 한미사이언스 측은 "내부 논의 중인 사항"이라며 "(주총 철회가) 공식적으로 결정된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그러나 송 회장의 장남인 임 사내이사가 화해 제스처를 취한 만큼 창업주 가족 간 분쟁에 변곡점이 마련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상속세 납부를 위한 주식 매각으로 지분이 줄어들고 있는 형제 측이 내년 한미사이언스 정기 주총에서 경영권 방어를 위한 강력한 우군을 확보하지 못하면 가족 간 타협을 모색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지난 10월 주주명부 폐쇄 기준으로 신 회장과 송 회장, 임주현 부회장, 킬링턴 유한회사의 '4인 연합' 대 '형제 측' 지분 구도는 33.78%대 25.62%였지만 현재는 약 35%대 23%로 벌어졌다. 가현문화재단과 임성기재단이 4인 연합에 가세하면 41%에 달한다.
송 회장, 임 부회장 모녀도 지분을 사 준 '우군' 신 회장과 킬링턴이 더 큰 이익을 위해 돌아설 가능성을 우려해 가족인 형제 측과 재결합에 우호적으로 바뀔 수도 있다.
신 회장은 애초 형제 측과 손잡고 모녀 측이 추진한 OCI그룹과의 통합을 무산시킨 적 있으며 킬링턴의 대주주 라데팡스는 임종훈 대표 소개로 한미약품그룹과 인연을 맺었다.
라데팡스 김남규 대표는 지난달 22일 연합뉴스에 "그동안 라데팡스는 오픈(공개)되거나 오픈되지 않은 여러 딜(거래)에서 가족의 이해관계를 일치화시키고 합심해 상속세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제안을 수차례 추진해 왔다"고 밝힌 바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고소·고발로 극한 대립으로 치달은 송 회장 모녀와 형제 측이 화해하기 위해서는 고소 취하와 진정성 있는 사과 등이 필요할 것"이라며 "단순한 재무적 투자자 관계가 아닌 가족인 만큼 상생을 위한 타협을 모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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