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첫 인공위성 '우리별 1호' 발사 30년…우주시대 알린 서광
연합뉴스
입력 2022-08-10 07:55:00 수정 2022-08-10 08:04:48
1992년 8월 11일 첫 국적위성 발사…KAIST서 30주년 행사


우리별 1호[KAIST 인공위성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문다영 기자 =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오늘 우리나라의 첫 인공위성 '우리별 1호'를 하늘에 띄우게 된 기쁨을 온 국민과 함께 나눕니다. 방금, 지구의 맞은편에서 저녁 하늘 한가운데로 힘차게 솟아오른 우리 '과학위성'의 찬연한 불꽃은 겨레의 반만년 역사에 '우주시대'가 새로이 열렸음을 알리는 서광(曙光)이었습니다."

30년 전인 1992년 8월 11일, 노태우 당시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첫 인공위성 '우리별1호'가 남미 프랑스령 기아나 쿠루 기지에서 성공적으로 발사됐다는 소식을 알리며 이렇게 말했다.

질량 48.6㎏의 아주 작은 위성인데다가 제작도 해외 대학(영국 서리대)과 함께 했지만, 우리별 1호의 개발과 발사는 우주과학기술 불모지였던 한국이 발전의 초석을 다지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한국은 우리별 1호가 우주로 올라가면서 세계에서 22번째로 국적 위성을 보유한 국가가 됐고,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위성개발 능력을 확보해 오늘날 자력으로 위성을 제작하고 있다.



우리별 1호 위성[KAIST 인공위성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실패하면 도버해협에 빠져라"…KAIST 학생 5명 영국 유학

우리별 1호 개발의 배경에는 선진국에서 위성 기술을 배워 오는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장학생으로 보내진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젊은 공학도들이 있었다.

10일 대통령기록관에 따르면 우리나라 우주개발 정책이 공식 문서의 형태로 정리된 자료는 1993년 마련된 '21세기에 대비한 항공우주사업의 육성방안'이 처음이다. 이 자료에는 항공우주산업을 육성해 저궤도 위성기술을 다목적 용도로 개발해 선진 우주산업 대열에 들어가겠다는 목표가 적혀있다.

이런 정책이 세워질 수 있었던 배경은 1989년 봄 KAIST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 소장이던 최순달(1931∼2014) 박사는 복도 게시판에 영국 서리대 석사과정으로 유학해 위성기술을 배울 장학생 5명을 모집한다는 공고문을 붙였다.

최 소장은 1982∼1983년 체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전신) 장관을 지낸 데 이어, 대학원만 있던 KAIST의 학부 과정인 '한국과학기술대학'(KIT·과기대)의 설립을 주도해 1985∼1987년 초대 학장(현 KAIST 총장에 해당)을 지낸 후 교수로 재직중이었다.

서울대 전기공학과 출신으로 미국에서 전자공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캘리포니아공과대(캘텍) 부설 제트추진연구소(JPL)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던 최 소장은 "위성 기술을 아는 국내 인재가 있어야 한다"며 제자들을 해외로 보내 위성 기술을 공부하고 익히도록 하는 데에 각별한 의지를 보였다.

최 소장이 낸 공고를 보고 지원한 학생들 중 전산과의 김형신 최경일, 전자과의 김성헌 박성동 장현석이 뽑혀 영국 유학을 갔다. 이들 5명 모두 과기대 1기, 즉 KAIST 학부 1회 졸업생이다.

이들 중 다수는 인공위성이라는 생소한 분야에 관심이 있었다기보다는 장학금을 받아 해외 유학을 다녀올 수 있다는 생각에 지원했다고 한다. 최 소장은 이들에게 강한 동기와 사명감을 불어넣었다.

나중에 인공위성과 그 탑재체·지상국 등을 개발하는 업체 쎄트렉아이[099320]를 창업한 박성동은 연합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전자과나 전산과가 인공위성을 만든다는 것도 당시 고정관념으로는 생소했고, 우주는 천문학에 가까운 분야였다"며 "인공위성은 국내에서 접하기 힘들었다. 유학 가기 전에 서울에 교보문고를 가서 찾아봐도 책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순달 교수님이 칠판에 'devotion'(헌신)이라는 단어를 쓰시면서 저희에게 '(KAIST에서) 공짜로 공부한 너희들이 사회에 나가서 기여를 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는데 그전에는 한 번도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 말이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충남대 컴퓨터융합학부 교수가 된 김형신도 "(최순달) 교수님이 항상 국민의 세금으로 공부를 했으니 성공해야 한다고, 실패하면 도버해협에 빠져 한국으로 돌아오지도 말라고 하셨다"며 "우리별 1호를 성공시켜야 한다는 책임감과 역사의식, 우리가 배워야 한국의 위성기술을 자립시킬 수 있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고 회고했다.

우리별 1호 연구에 몰입하는 연구원[KAIST 인공위성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들은 그렇게 영국으로 간 뒤 넉넉하지 않은 장학금에 보태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 가며 열심히 공부했다. 햄버거 가게에서 패티를 굽고 중국요릿집에서 웨이터로 일하면서도, 매일 밤 자정을 넘기며 함께 공부했다고 한다. 위성을 만들기 위해 전산과 학생이 기계 공정을 공부하는 등 학부 전공과 관계없는 분야까지 '1인 3역'을 하며 석사과정을 보냈다고 이들은 회고했다. 생소한 영국식 영어와 텃세를 부리는 일부 영국인들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들이 유학중이던 때 한국에서는 본격적으로 첫 국적 위성을 만든다는 프로젝트가 시작됐고 이들 '1기 유학생'에 이어 KAIST 학부 2회 졸업생 중 다시 선발된 2기 유학생 4명이 더 합류하면서, 한국인 유학생 9명이 영국 서리대의 위성개발팀과 함께 우리별 1호를 만들게 된다.

원래 위성의 이름으로는 학교 이름을 딸 '키트새트-A호'(KITSAT-A) 또는 '과기대 1호' 등이 거론됐으나, 우리나라 최초의 위성이니 우리말을 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여론에 따라 '우리별 1호'로 이름이 정해졌다.

우리별 1호의 성공 이후 귀국한 유학생들과 함께 국내에서 지상시스템 등을 구축했던 연구원들은 KAIST 인공위성센터에서 근무하며 국내에 인공위성 기술을 전파했다. 이후 1993년 우리별 2호, 1999년 우리별 3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됐고, 2003년 국내 최초 천문관측위성 과학기술위성 1호 발사 등에 이르기까지 본격적인 과학기술위성 개발이 진행됐다.

귀국 후 인공위성연구센터에서 충분히 제 역할을 해낸 유학생들은 창업하거나 전공 분야의 교수가 되는 등 각자의 길을 걸어갔다.



우리별 1호가 찍은 지구[KAIST 인공위성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우리별 1호 다시 지구로 돌아올까…재진입 기술 실증에 활용 예정

공식 수명이 5년이던 우리별 1호는 1996년 12월 원래 임무를 마쳤으나, 그 후로도 약 7년 정도 더 작동하다가 2004년 8월 교신을 마치고 운용을 완전히 종료했다. 할 일이 없으므로 이젠 '우주 쓰레기'가 됐지만 우리별1호는 여전히 지상으로부터 1천300㎞ 떨어져 궤도를 돌고 있다.

이에 KAIST는 우리별1호 발사 30주년을 맞아 '우리별 위성 귀환임무'를 추진하는 기획연구를 통해, 우리별1호를 우주기술 개발에 다시 한번 활용할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KAIST 인공위성연구소의 'KAIST 미래선도 우주 프로그램' 기획안에 따르면 이 사업은 우리별 1호를 포획해 대기로 재진입시키면서 아직 국내에 없는 우주탐사 핵심기술인 궤도조정, 랑데부, 위성 근접비행 등을 수행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저궤도에서 지상과 우주를 관측하는 기존의 임무에서 벗어나 우주를 탐사하는 기술로 위성기술 개발 방향을 전환하는 동시에, 전 세계적으로 우주쓰레기 제거 필요성이 대두함에 따라 관련 기술을 확보한다는 것이 KAIST 인공위성연구소의 구상이다.

권세진 KAIST 인공위성연구소장은 "3기의 우리별 위성 중 처음에는 일단 위성을 포획해서 태우는 가장 단순한 기술을 검증하고, 기술 성숙도를 높여가면서 일부는 지상으로 귀환시키는 걸 구상하고 있다"며 "2027년이나 2028년쯤에는 한국형발사체를 통해 우리별 위성을 포획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별 1호 랑데부·근접비행 상상도[KAIST 인공위성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우리별1호의 개발자들은 지난 30년간 위성개발에 매진해온 시간을 회고하며 앞으로 더 많은 국내 연구진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동 쎄트렉아이 창업자는 "30년이라는 기간이 긴 것 같으면서도 짧다. 우리나라 위성기술은 놀라울 정도로 많이 발전했지만,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며 "우리가 7대 우주강국에 진입했다고는 하지만 앞선 6개 나라(러시아, 미국, 프랑스, 중국, 일본, 인도)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 있어 지금보다 훨씬 힘들게 달려야한다"고 말했다.

김형신 충남대 교수는 "우리별 1호 위성 개발 이후에도 국내 연구진이 위성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어려움에 주저하지 않고 여태까지 끊임없이 우주개발을 해왔다"며 "인공위성연구센터를 나가 쎄트렉아이를 차려 해외 위성을 수주하고 수출하는 자리에까지 오른 친구(박성동)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우리별 1호의 개발자들을 비롯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와 우주 기업 대표자 등 250여 명은 11일 우리별1호 발사 30주년을 맞아 KAIST 대강당에 모여 30주년 기념식을 한다.

우리별 1호를 개발한 1기 유학생 중 한 명이었던 KT SAT 최경일 CTO가 '우리별 이후 저궤도 활용 발전 현황'을 설명하며, 이 밖에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 한국항공대학교 관계자 등이 우리별 1호와 관련한 주제발표를 할 예정이다.

zer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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